討論의 廣場
파고다 공원
위의 제목으로 이 페이지를 설치한  동기는 여러분이 이제 심리적으로나, 학문적으로나, 사상적으로나, 철학적으로나  성숙 하였고 이제는 서로 정의롭게 생각을 표현 하고 또한 토론을 같이 하여 보자는 뜻에서 입니다.  서울의 파고다 공원 이나 London의 Hyde Park은 사상, 정치,종교, 철학 등등을 자유롭게 발표하고 토론 하는 곳입니다.  우리도 이 광장을 통하여 속 시원 하게 우리들의 뜻을 발표하는 곳으로 사용 하여 주었으면 합니다.  이 광장은 자유의사 표현이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민주주의적 의사소통의 원칙을 따르겠습니다.  우리도 신사적으로 남에게 실례가 되지 않을 만큼 자신 있게 토론과 대화를 할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보자고 한 동기에서 시작 하였습니다.  하나, 우리는 또한 어느 정도의 예절을 지키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October 11, 2005

       홍창기 형:
     
        우선 지난번 형에게 한 편지 다른 동기에게도 돌린 이유를 설명해야겠군요. 그 이유는 형뿐 아니라 다른 동기들과도 이야기 하고 싶어서였습니다.  하되 이렇게 하는게 잘 하는 짓이 못되는데, 하면서도 그렇게 했읍니다. 더 좋은 방법이 잘 생각나지 않아서. 만일 저희 동기들 전부가 아니라면, 거의 다가 형과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는것을 지난번 코로라도 여행에서 확인 했습니다. 그래서 내 생각은 그렇치 않다는것을 알리고 싶든차 형에게서 받은 편지에 답장하는 기회를 이용한것입니다. 지난번 코로라도 여행하든 어느날 형과  이야기 나누든중  우리들은 영 debate를 할줄을 모르는 종족이라는데 생각이 같았습니다. 홍형이 직원이 3000이 넘는 아산병원 병원장으로 계실때 어떤 안건에 대해 의견을 진술하라 하면 아뭇 소리 안하고 ‘원장님이 다 알아서 하십시요’ 해놓고는 나중에 이걸 왜 이렇게 했느냐  저렇게 했느냐고 시비건다는 경험담을 제게 들려 주시면서 우리들이 의사소통을 잘 할줄 모르는 민족이라는데  저와 의견이 일치 했습니다. 저도 의사소통 능력이 아주 부족함을 이곳에 살면서 절실히 느꼈읍니다. 예를 들어 이곳 병원 생활 32년 동안 staff meeting 에서 입을 벌려본적이 거의 없습니다. 속에서만 이러쿵 저러쿵 혼자서 중얼거리다가  회의장 밖에서나 동료들에게 “자식들”, 하고 욕하는게 고작입니다. 왜 그렇게 됬는가. 영어를 남들 처럼 미끈하게 하지 못한다는 이유도 있습니다. 그러나 보다 더 큰 이유는 우리들에게 논리적으로 토론할 기회기 없었다는데 있다는 제 의견에 형도 동의했습니다. 따라서 말재주가 극히 없습니다. 이곳 방송에 한국관리들이 나와서 토론 하는것 언제 들어 봤는지 기억이 안 납니다. 또 항상 말조심 하라는 말을 듣고 자랐고 남의 귀에 거슬리는 말은 입밖에 내지 않는 미풍(?)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나에 대한 비판은 당자에게선 들을 기회가 없고 항상 제 3자를 통해서만 들을수 있습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그래서 툭하면 틀어지게 되고 말도 안하고 지나게 되고 맙니다. 저도 물론 항상 그렇게 살아 왔고 나의 문제를 제 3자인 제일 친한 친구에게 이야기 하면 “그래?  그러면 그자에게 당장 이야기 할것이지” 하는 소리 밤낮 듣고 살아왔습니다. “그런 껄끄러운 소리를 어떻게 당사자에게 한담” 하고 항상 말하지 못하고 지냈지요. “그래야만 되는구나. 나도 그래 보겠다”고 생각하게 된것은 극히 최근의 일입니다. 그래서  큰맘 먹고 한번 해본게  저번에 보낸 편지입니다. 홍형에게 한 제 편지를 읽어보고 논평을 한 동문은 홍형외에 세분뿐이었읍니다. 그전에는 보고서도 전혀 생각해 보지 못했는데  요새 제 눈에 뜨인게 있습니다. 이곳에서 발행되는 신문에서는 똑같은 사항을 가지고 서로 반대되는 입장에서 논하는 두 사람의 글을 나란히 볼수 있으나 한국신문은 그렇치 않다는 것입니다. 보수신문에서는 보수적인 인사의 글만을, 진보적인 신문에선 진보적인 사람의 논설만이 실려 있읍니다. 토론하는 훈련을 가질 기회가 없이 자란 우리인지라 다른 의견은 수용할 여지가 우리에겐 없다는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가 아닌가 합니다. 대중 정보 전달자로서 각종 여론을 수렴해야할 신문은 자기 상품을 많이 팔려고 자기상품만 진열하는 다른 업종과는 좀 달라야 할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고 형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넘어 가겠습니다.

       리영희씨가 편파적이냐 아니냐에 대해선 더 이상 논할 필요가 없을것 같군요. 그야 말로 “agree to disagree”로 놔 둡시다.
      
       “왜 남한의 많은 젊은이들이 미국을 adversary 로 보고 북한을 ally로 보게  되었는가…중략…그단체(全敎組) 에 속한 의식화된 교사들이 지난 오랜 세월동안 비공식 적으로,  그리고 최근에는 공공연 하게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에서 어린 학생들의 사고를 바꾸어 놓은 결과” 라고 하시는 형의 말씀에 대해 좀 생각해 보겠읍니다. 

       우선 “비공식적”이란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다음에 하신 “공공연”이라고 하신 말과 연결해 볼때 “비공식적”이란 것은 “몰래” 또는”정부가 허락하지 않는” 말하자면 그런 의미가 아닌가요. 그런 의미로 말씀하셨다고 치고 이야기해 보겠읍니다. 지금 저희 나라뿐만 아니라 중국도 일본이 교과서 를 “외곡” 했다고 흥분하고 있고 외교관계 까지 악화 되고 있는것 아시지요. 그런데 가령 일본판 “전교조”가 외곡된 정부가 만든 역사교과서에 의하지 않고 진실한 역사(외곡 되지 않은)를 일본학생들에게 가르친다고 가정해 봅시다. 홍형은 이 일본판 “전교조” 가 일본 학생들의 “생각”을 고쳐 논것은 잘못이라고 하실건가요?
       “그거야 일본은 교과서를 ‘외곡’ 했지만 우리는 그런 사실이 없으니 그렇게 비교하는건 정당치 않다”고 자신 있게 말씀 하실수 있습니까? 문제의 핵심은 여기에 있습니다. 교과서 외곡이 일본에게만 있고 우리에겐 없느냐? 이게 문제 입니다. 이것을 밝혀야 “전교조”가 한게 잘못한 짓인지 잘 한짓인지 팜가름이 나는 것입니다. 그걸 밝힘이 없이 덮어놓고 잘못됬다고 하면 곤란 합니다. 그걸 밝히기 위해서 우리는 공부해야 된다고 지난번 편지에 제가 감히 말씀 드린것입니다. 그런 공부 없이 논쟁(?) 해 봤자 밤낮 체 바퀴 돌리는 다람쥐격이 됩니다.

        그때 제가 읽어 보시라고 한 책은 사실 너무 길어사 바쁘신 홍형이 읽으시기엔 너무 무리라고 생각되기에  이번에는 다른 짧은 글을 적고 생각해 보지요. 황석영이라는 작가가 만해(한용운) 문학상을 탄, 월남전을 소재로 쓴 소설 “무기의 그늘” 신판을 내면서 책 머리에 쓴 글을 적어 보겠습니다. 1992년 5월 뉴욕에서 썼다고 적혀 있습니다. 이것은 사족입니다만  그의 작품인 장길산, 오래된 정원,  객지, 무기의 그늘, 한씨연대기, 삼포가는 길 등이 중국, 일본, 프랑스, 미국등지에서 번역, 출판 되었으며  시인 고은 씨와 함께 금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올라가 있다는 신문기사를 읽었읍니다.
오늘(10월 14일) 신문에 Harold Pinter 라는 영국 희곡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탓드군요. 그는 Tony Blair 를 a “war criminal” 그리고 United States “a country run by a bunch of criminals” with Blair its “hired Christian thug”이라고 말했다고 써 있드군요.      
      
       “내가 한국을 떠난 지 벌써 만 3년이 지나갔고 세계는 엄청나게 달라졌다. 남북관계나 통일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할 수 있는 대미관계는 겉모양은 조금 변화한 듯 보이지만 아직 본질적으로는 변화한 게 없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다.
       아니, 변화의 가능성은 우리의 자주적 능력에 맡겨진 채 현상고착의 모습으로 남아있다. 우리가 지금 스스로의 힘으로 민족사를 창조해내지 못하면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외세는 자기네 이해관계에 따라 동아시아의 판도를 재편성하려 들것이다.
       세계가 들끓는 변화를 시작하기전에 나는 또 다른 자아를 찾아서 북을 방문하였으며 베를린에서 장벽이 무너지고 뒤이어 동구라파와 소련이 사회주의를 포기하고 역사의  먼 과거로 되돌아가는 과정을 지켜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냉전의 한편을 주도해왔으며 지금도 제국주으적 패권주의를 유일하고 완강하게 고수하고 있는 미국에 와서 나는 다시금 ‘자주’를 생각하는 것이다”.
(Italic 은 제가 사용했음)

   황석 영 씨, 리영희 씨, 고은 씨, 등 소위 친북파라고 매도 당하는 분들이 이야기 하는 것은 다름이 아닌 우리의 자주를 찾고, 남이 정해주는게 아니라 우리가 우리의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위의 황석영씨의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반드시 버려야 할것은 누군가가 우리를 위해서 일해줄거라는 헛된 기대입니다. 미국이 월남의 자유를 지켜주기 위해서 피를 흘렸다는, 그리고 지금은 이락에 민주주의 정부를 세워주기 위해서 막대한 재산과 피를 흘리고 있다는 것과 같은 헛된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것 입니다.
      미국사람들(그들만 그런게 아니지요,다른 나라 사람들도, 그리고 사실은 우리도,)이 그렇게 자비스러운 인간들이 아니라는 증거로 단 한가지만 들겠습니다. 멀리서 찾아볼 필요도 없습니다. 여기서, 바로 내가 사는 워싱톤주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한가지만이면 족합니다. 몇년전 이곳에 지진(epicenter, Nisqually)이 나서 이곳 워싱톤주에 있는 시설이 여러개 파괴 됐는데(다행이 인명피해는 한명뿐 이었던걸로 기억) 그중 Alaska Viaduct 라는 고가도로가 흔들려 금이 갔고 전문가들이 말하기를 다음 지진에는 견디지 못할것이니 헐고 다시 지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몇년을 옥신각신 하다가 금년에 인기 없는 gasoline tax bill을  간신히 주의회가 통과시켰습니다. 그러자 많은 시민들이 들고 일어나 폐지하자는 안이 제출되어 금년 11월에 투표 하겠금 되어 있습니다. 얼마나 큰 세금이길래 그 야단이냐? 금년에 gallon 당 3전 걷고 내년에 6전, 그 다음해에 9.5전씩 걷자는 거지요.  이걸 폐지하자고 주장하는 측의 이유인즉 “정부를 못믿겠다“는 겁니다. 세금 올리기만 하고 쓸데 없이 낭비만 하는 이 정부 못믿겠다, 이게 이유입니다.  공사가 필요 없다는건 아닙니다. 자국민 조차  자기 정부가 하는 일 믿지 못하고 한푼을 쓰기 아까와 하는 이들이 남의 나라를 위해서는 피와 재산을 아까워 하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믿을수 있나요?  일본이 우리를 살려줄 나라라고 믿었든 이광수나 최남선이 어떻게 되었지요? 똑 같이 되푸리 되는 역사는 없다고 합니다만, 그리고 미국은 일본에 비할수 없이 거대한 그리고 유일한 초강대국 이라 일본과 다르지만, 그래도 옛날을 되돌아 보고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우리가 자주적으로 우리 문제를 풀지 못하고 남에게 기댈려는 한 어제는 일본, 오늘은 미국, 내일은 중국, 모래는 쏘련이 우리를 “살려준다”고 우리를 속일거니 정신 차리라고 한 “전교조”가 잘못이다 이말입니까? 이것은 뭐 새삼스러운 말도 아니지요. “미국놈 믿지 말고 쏘련놈에게  속지 말라. 일본놈 일어서니 조선사람 조심해라” 하는 격언 60 년전 해방때 부터 듣든 소리 아닙니까.
       “전교조” 가 바꿔 놓은 생각이란게 도대 체 어떤 생각일까요. 66%의 젊은이들이 미국과 이북중에서 택일 할때 미국을 버리고 이북을 택하겠다는게 무엇을 의미하는걸까요. 우선 미국에 대한 불만이 무엇이며 이들은 미국에게 요구하는가를 알아봐야 하지 않나 합니다. 그들이 미국에 대해 원하는것은 약 45년전 미국에 있는 흑인들이 백인에게 요구했든것과 별 차이가 없다고 봅니다. 그때 흑인들이 요구한게 무엇입니까. 평등한 대우입니다. 지쳐서 집에 돌아가는 한 흑인 여인이 뒷 자석으로 옮기라는 뻐스 운전사(백인)의 명령에 자기도 똑 같은 요금을 냈으니 그럴수 없다고 뒷자석으로 가기를 거절 한것과 상통 합니다. 그뒤로 무엇이 벌어졌는가는 제가 말할  필요가 없을것입니다. 형을 포함해서 누구나 다 아는 일이니까요. 지금 남한의 젊은이들의 요구는 이 흑인의 요구와 다르지 않습니다. 여학생 둘이 미군차에 치어 죽었을때 그 사법처리 과정을 지켜본 젊은이들이 우리도 이 흑인여인과 같은 차별을 당하고 있다고 느꼈고 그 시정을 요구 한것이 아닌가요. 그게 촛불시위지요. 뻐스 안타기 운동과 Martin Luther King 의 행진과 같은것입니다. 한국군의 작전권은 아직도 미국이 쥐고 있고 소위 SOFA 도 개정되지 않고 있습니다.”우리들은 감히 못 하든일 네가 하다니 정말 장하다” 하면서 부모들도 나섰기에 흑인 민권운동이 성공했지 “얘야 너 정신 나갔니? 네가 그런다고 백인들이 눈이나 끔쩍 할것 같으냐 그러다간 너만 다친다” 는 부모가 대부분이였다면 오늘날의 흑인신세는 그때와 마찬가지로 남아 있었을 껍니다. 소수 민족으로 미국에 사는 우리도 동등권을 싸워온 그들 덕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젊은이 들이 공산주의로 흐를까봐 걱정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되나 저는  기우로 봅니다. 조국의 장래에 절망을 느낀 이들이 이민으로 출구를 뚫어보려는 첫째 지망지가 미국이라고 들었습니다. 이들이 반대하는것은 미국의 정책이지 미국으로 대표되는 자본주의의 거부가 아닙니다.그렇다면 왜 미국으로 오겠다고 하겠습니까. 공산주의를 이들이 동경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들의 100%가 이북에 가 살 생각이 없다는것을 보아도 알수 있습니다. 그럴수 밖에요. 누가 자유없는 세상을 좋다 할것입니까. 이들이라고 생각이 없겠읍니까. 우리도 “요새 젊은이들은 영…” 하는 소리 젊을때 듣고 자라지 않았습니까. 늙으면 다 자기가 현자로 느끼게 되게 마련이고 젊은이는 철없는 짓 한다고 느끼게 되게 마련입니다. 그들은 자주적인 통일을 바라지 공산주의를 바라지 않습니다. 통일된 한반도가 공산주의 세상이 될 가능성은 전무하다고 저는 장담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요. 우선 남한 인구가 북한의 두배요, 경제력이 최소한 30배 아닙니까. 그러니 지금 북한 인구 전부가 똘똘 뭉쳐봤자 남한에 비해 2대1의 열세인데 똘똘 뭉치지도 못했습니다. 그것은 탈북자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남한에 있는 소위 “친북” 젊은이들 조차  북한(현재 공산주의 체제하의)엔  아무도 가 살지 않겠다고 하니 도대체 통일된 한반도에 공산주의 하겠다는 부류가 누구인가요?  승공통일 하자든자 다 어디로 갔나요. 남쪽이 이미 이기지 않았나요?
        저도 노무현 의 무리 들에 실망한 사람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제가 실망한  이유는 홍형과는 다릅니다. 그는 대통령 후보때는 미국이라도 “할 이야기는 한다”고 큰소리 쳤습니다. 그러나 당선되자 마자 죠지 부시에게 머리 숙이고  이락에 군대까지 보내는 수다를 떨었습니다. 말인즉 “국익을 위해서”. Tony Blair 를 George 가 끌고 다니는poodle이라 일컬었는데 노무현은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그의 경쟁자는 이회창이였읍니다. 그러니까 노무현이 안됬다면 이회창이 됬을텐데 그랬더라면 더 나은 세상이 되었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되지 않습니다. 저로선 “Anybody but 이회창”이 올씨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렇게 생각하는사람이 저만은 아닌 모양입니다. 선거전에 홍세화란 사람이 이회창(후보)에게 쓴 공개 편지를 저는 지난주에야 그가 쓴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이란 책에서 읽었습니다. 형은 그때 고국에 계셨으니 읽어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혹시 읽어 보신적이 없으시다면, 그리고 그때 읽으셨드라도 다시 한번 읽어 보시고 그(홍세화)의 생각이 틀렸나 맞았나 생각해 보시는게 어떨까 해서 첨부 하겠습니다. 이 분도 “전교조” 에 의해 생각이 바뀐 말하자면 그들의 피해자의 하나 일까요? 그분이 중고등 다닐때는 “전교조”가 없었거나 있었어도 이런 유수한 학교를 나오신 분이 시시한 “전교조”에 의해 생각이 “바꿔” 졌다고 생각하기는 저로선 힘듭니다.
       지금 현재  우리로서는 통일후의 체제를 가지고 논하는것은 사치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통일이 급선무고 다른것은 차후로 미뤄야 합니다. 물론 생각은 충분히 해 두워야지요. 한가지 잊지 말아야 할것은 어떤 체제든 거기에 따르는 모순이나 병폐는 항상 있게 마련인 것 입니다. 약 효과엔 부작용이 반드시 따르듯이. 북한은  말할것도 없고요. 그리고 세상에 순수한 체제라는게 있을수 없는것 아닐까요. 중국이 공산주의입니까? 자본주의입니까. 쏘련도 Vodka에 취해 갈지자 걸음을 걷고 있고  Finland도 무엇이든 다 기회균등인 나라는 아니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 누구나 다 대학에 갈수 있는 기회는 그들에게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세계 최고의 성적을 올리고 있습니다. 기회균등이 반드시 사회에 좋은게 아니라는 것 보여주는 예입니다.(Why can’t we be like Finland by Robert G. Kaiser, Washington Post ,Sept. 25, 2005 참조) 대학교에 입학할수 있는 기회로 따진다면 우리가 Finland 보다 더 기회균등의 나라지요. 또 미국이 완벽한 capitalism, 철저한 우승 열패의 Social Darwinism 의 나라입니까?  Medicare, Medicaid, 재산의 유무에 관계없이 받는 의무교육(고등학교 까지는). 그렇게도 small government, government is not the solution, government is the problem 이라고 떠들든 보수파들도 Hurricane Katrina 로 인해 New Orleans가 물에 잠기자 그 전날까지 세금 내리고 지출 줄이겠다고 떠들든 죠지조차 하루 아침에 “We will rebuild whatever it takes” 라고 떠들면서 돈을  물쓰듯 공공 사업에 쳐넣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로서는 외세를 배제하고 자주 통일하는게 급선무 입니다. 지금은 다른걸 따질 겨를이 없습니다. 우리가 이런걸 따지느라고 허송세월 하는걸 기뻐할자는 누구겠습니까. 우리를 요리해 먹을려는 외세들뿐입니다.                               
       노력하는 사람이 노력 안하는 사람보다 더 보상 받아야 된다는것 당연하지요. 거기에 이의를 제기할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문제는 어디까지가 정당한 보상이고  어디부터가  과도한 보상이냐겠지요. 미국도 수입에 따라 세율이 다르지 않습니까. 일년소득이 만불되는 자나 백만불 되는 자나 세율이 똑 같아야만 (말하자면 flat tax)  공평한 사회라고 말씀하시는것은 아니시겠지요. 노력하는 자와 노력 안하는 자를 공평하게 다루는게 그리 쉽지 않음은 형도 인정 하시리라 믿습니다. 누구나, 어디서나 합당한 선 찾기에 진땀 빼고 있는것 아닙니까. 이것은 다 통일후에 해결 해야할 문제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인구가 절대 다수이고 경제력이 막강한 남쪽이 결정권을 쥐고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 자주적인 통일 을 위해서만 힘을 쏟는게 상책입니다.
       애국을 들먹거리는 사람들 경계하는건 제가 홍형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 것 입니다. “Patriotism is the last refuge for the hooligan” 이란 말이 있듯이 애국을 독차지 하는자 항상 위험합니다. 성조기로 자기몸은 감싸고 상대방을 비애국자로 몰아 부치는자 정말 한심 합니다. 그런데 애국을 방패로 삼고 자기를 애국자로 자칭하는 자와 그에 맞서 싸움으로서 국민이 자연적으로 그를 애국자로 부르는 애국자와는 구별이 되야 합니다. 전자에 속한게 Hitler, Stalin, 김정일, 박정희 등이고 후자가 Nazism 에 항거한 사람들, Stalin 의 학정을 폭로한 Alexandr Solzhenitsyn, 그리고 박정희 군사쿠테타 세력에 굴하지 않고 싸운 함석헌, 장준하, 리영희 등입니다. 이것은 분명히 가려야 합니다. 옥석을 잘못 가르면 폭군을 영웅으로 만들어 놓고 양심가를 비애국자로 만듭니다.  
       국가권력이 국민을 뭉친다는 기치하에 국민의 자유를 박탈, 남용 하는 정신적 구조가 어디에서 나왔느냐, 특히 우리같은 경우에, 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좋은 책이 있습니다. 박노자란 사람이 쓴 ‘優勝劣敗의 神話’ 그리고 같은 저자의 ‘나를 배반한 역사’ 입니다. 한번 읽어 보시기 권합니다.
       너무 길게 썼는지 모르겠읍니다. 그리고 무례한 언사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글써 본 경험이 별로 없는 탓으로 돌리고 너그럽게 양해 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형을 항상 존경하는 이회백
     


(참조 1)
     

목차

이회백 학형에게 (홍창기)

홍창기형 1 (이회백)

이회창씨에게

최공창의 콤맨트

대화 (강창욱)

친애하는 이회백학형2
(홍창기)

홍창기형 2 (이회백)

이회백학형 에게 3 (홍창기)

홍창기형 3 (이회백)

김추기경특별회담 (이희경)

미국은 이기주의? (김영철 )

William K. Joh's
Comment





나의 소견으로는 민주주의가 서양에서 먼저 발상하게 된 이유중의 하나가 대화가 사상과 형이상학적  문화의 발판이 된 것으로 봅니다.  역사적으로 유명해서 아직도 현대의 사상에 그대로 남아 있는 학문적, 정치-사상적, 철학적 걸작은 그리스 로마시대(Classic Period)에 대화형식으로 쓰여져 있지 않습니까.  이대화형식도 보면 일대일의 평등한 자세로 하엿고 상대방을 존중(Civil)한 자세였다고 봅니다.  예로서 Plato의 Sophist 같은 것이 그런 것 아니 겠습니까. 숫제, Dialogue는 아주 그렇게 하는 것이 올타고 본 것이 아닌지요. 성경같은 classic도 대화형식으로 복음이 적혀 있지 않습니까.  서양교육은 Seminar를 강조하고 아직도 전통을 고수하는 서양 학교는 토론경시대회를 중고교에서 흔이 시행 하고 있읍다.   우리가 토론을 하는 방법과 태도에 근본적으로 교육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이 힘이 드는 것 같습니다.  서로 배워가면서 서로 존중하면서 예의를 지키며 너무 성급하게 상대방을 설득시키려 하지 말고 상대방의 의사를 끝가지 듣고 천천히 조리 있고 현명하게 설득시키려는 대화를 배우면서 대화를 즐기며 그기서 배움을 얻으면 어떨가요?

강창욱

September 5, 2005

이회백 학형에게:

빌려 주신 리영희의 “대화”를 흥미있게 읽었습니다. 책을 돌려드리며 독후감을 써 보내야 할 의무감을 가지게 되는군요.  우선 리영희 라는 분의 성품이, 진실을 파고 들며 꼬치 꼬치 캐 묻는 style이 형과 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I hope that similarity ends there, and your ideas are not necessarily same as his.
지난번 여행중 마지막 만찬자리에서 내가 말한 것처럼 나는 의대졸업후, 군복무기간을 제외하고, 사회인, 직업인으로 지낸 40여년을 한국과 미국에서 반반을 지내왔기에 양쪽 문화와 국민정서(pathos)를 좀 안다고나름대로생각합니다. 그런 배경을 가지고 몇가지 comment를 두서 없이 나열하겠습니다.
1. 리영희씨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의 미국의 약소국에 대하는 국제정책의 나쁜점, selfish manipulative scheme을 잘 지적하고 있습니다. 또 바람직한 인류의 삶의 방식으로서 미국식 자본주의도 아니고 소련식 공산주의도 아닌 제 3의 길로 모택동이 이끈 중국 공산주의 model을 높이 평가합니다.
그러나 한 쪽은 나쁜 점만 부각시키고, 다른 쪽은 좋은 점만 부각시키는 unbalanced evaluation 즉 biased comparison을 하고 있다는 것을 우선 지적하고 싶습니다. 각각의 장단점을 함께 비교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모택동이 농민을 위한 혁명을 일으키는 과정에서 수천만의 희생자를 생산했다는 사실, Tibet인민을 무력으로 억압하고 식민지화하고 있다는 사실, 중국내 빈부의 격차와 부정부패에 대하여는 눈을 감고 있습니다. 또 등소평에 의한 중국의 자본주의화는 자기의 연구영역이 아니라고 제외합니다. 그분은 또 일본의 극악한 식민지정책을 비판하면서도 한편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로 바뀐 뒤의 일본내에 있는 양심적인 지식인의 존재와, 만끽할 수 있는 자유에대하여 긍정적인평가를 하고 그것을 즐깁니다. 그러나 미국에 대하여는 어떠한  긍정적인 면에 대하여도 일체언급이 없습니다. 볼려고 하지 않았는지도 모르지요. 편견이라는 비판을 받을 만 할 정도로…미국의 제국주의적인 점을 욕하고, 반공 일변도의 대한민국의 군사독재 시절의 잘 못 된점 만을 부각시키니까, implicit하게 그 counter point인 소련, 중공, 북한이 better alternative인 것으로 주장하는 것 처럼 되어서, 반공을 국시로 하는 hypersensitive한 정부로 부터 본인이 고생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explicit하게는 북한을 찬양하지않았기에 재판에서는 무죄가 되었겠지요. 북한체제하에서의 인민의 고통,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곁드렸으면 그런 오해를 피할 수 있었을 것이고intellectually balanced and fair하지 않았겠어요? 국민이 굶어죽게 내버려 두면서 군대를 키우고 핵무기를 만드는 나라가 잘사는 나라입니까? 왜 이런것에 대하여는 침묵합니까?
2. 리영희씨는 인류의 삶의 방식으로 socialism이 제일이라고 생각하는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평등(equality)에 높은 가치를 두었지요. 소련 공산주의와 동구라파의 사회주의 실험이 실패로 끝난 이후에야 비로서 인간의 이기적 본성(selfish nature) 때문에 숭고한 평등사회가 일시적으로는 가능하겠지만 영구적으로는 불가능한가 보다고 한발 물러 서는 지혜를 만년에 얻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현재 북구라파에서의 민주적사회주의 혹은 사회주의적 민주주의 (social democracy)를 본 받아야 할 것이라고 결론을 내리는데, 북구라파가 자살율이 제일 높은 “복지국가”라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겠습니다. 의미와 가치를 추구함에 있어, 사람은 본성상 획일적 존재가 아니고 다양성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어느 한 면에서 평등하게 만들면 다른 면에서는 불평등이 증가하게 마련이어서 평등을 논할 때는 Equality of what?을 define하고 다른 면에서 unequal하게 되는 cost를 지불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Amartia Sen (Nobel 경제상 수상자)은 말하고 있습니다.
3. 우리는 의사이기 때문에 원래부터 알고 있는 사실 즉 사람의 동물적인 측면을 무시하고는 사람이 건강하게도 행복하게도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리영희씨는 만년에 비로서 터득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의식주문제가 어느정도 해결되면 평등보다는 자유가 더 우선 획득되어야 할 가치라고 인정합니다. 자유가 무엇입니까. 사람이 의미(meaning)와 가치(value)를 추구할 수 있는 자유를 말하는 것 아니겠어요? 다시말해서 불평등은 어느정도 감수할 수 있어도 자유로이 추구하는 기회를 희생할 수 없다는 것이 무시할 수 없는, 사람의 spiritual dimension이라고 나는 믿습니다. 의미와 가치가 고정된 집단 (예를 들어 Islam fundamentalist) 안에서는 자유는 별 가치가 없지만.
4. 결론적으로 리영희씨의 point of view를 존중은 하지만 동감은 못 하겠습니다. 말을 잘 하고, 글을 잘 써서 다른 사람들을 persuade하는 능력이 큰 분입니다마는 unbalanced view를 제시하므로 해서 critical thinking을 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그 것이 “계몽”이라고 나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Finite being인 사람은 어느 한 시점에 partial truth를 획득할 수는 있지만 whole truth는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코끼리 만지는 장님의 우를 범하지 말고,겸손해야 되겠지요. 또 사람이 사는 제일 좋은 방식이 무엇인지는 아직도 완전한 것을 찾지 못하여 계속 실험이 되면서 evolve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Sincerely yours,
Changgi Hong

P.S. 이번 주 New York Times 일요판에서 書評이 나온 것이 있어 scrap해 보냅니다.

Dear Webmaster and Friends,

Recently, I read Hoi Lee's discussion and comments on our website "pagoda"
posted on Oct.11 and Oct.27,2005. It appeared to me that H.Lee's postings
were specifically addressed to Chang Hong rather than to the entire
website audience.  If this is correct, his reply should be directed specifically to
C.Hong alone and not to the general reader. H. Lee himself insisted that
any discussion would be better served by comparing contrasting opinions side
by  side, so to speak,to fairly present both sides of the discussion. In this
situation,I do not see an equal presentation of both sides of the
discussion since I cannot read what C. Hong wrote to H. Lee and what specific issues
sparked the initial dialog.  Instead, I can only read a lengthy response
which to me seemed to be filled with assumptions, and where diplomacy was
replaced with self-asserting statements that appeared only to promote his
own ideological "merchandise".  It is my opinion that such personal
correspondence should be communicated between the parties involved rather
than cluttering public bandwidth with such self-promoting advertisement.

Personally, I am most concerned by the public manner by which H. Lee has
chosen to respond to C. Hong and wish that a more private method had been
used.

Respectively,

Casey (K.C.) Choi

Webmaster' response: It was this webmater' error on publishing first letter of Hoi Paik Lee to Changgi Hong.  I had sneeky suspicion that they have exchanged mails, but I just wanted to flame this page so that everyone can use it to discuss hot topic like this.  Now, as of this writing the mystery is resolved.  Now check all three pages of the Pagoda.  Changgi Hong finally made evrything clear by sending me all three letter he wrote.   See the follwing mail.
Dear Webmaster, Dr. Kang:

When you recently prompted us to visit the "Pagoda" in our Medical School Class Home page, I did and was shocked by finding Dr. Lee, Hoi Paik's rebuttals to my previous letters to him which were written after reading a book titled 리영희와의 " 대화" he lent to me during our recent trip to Colorado.  You also encouraged us to do "dialogue" in a civilized manner. The visitors to the "Pagoda" were, however, offered to be exposed to "monologues," not "dialogues," because they could not have my side of the argument.   Now I understand why Kim, Yeongcheol asked me to see my original letter to Lee, Hoi Paik, which I did not know then how Kim, Yeongcheol became aware of the correspondences between Lee, Hoi Paik and myself.   I simply have assumed that Lee, Hoi Paik forwarded my letter to a few close friends.  I feel now a sort of obligation to our Classmates to provide the undisclosed side of the dialogues, and am submitting to you my previous letters to Lee, Hoi Paik, (with corrections of misspellings), so far I had assumed to be private correspondences, for the visitors to the "Pagoda."   I also would like to add my latest reply to him to the letter I received on Oct. 27.  To facilitate classmates' easy grasp of the whole argument, I provide a chronological sequence of communications.

My first letter to Lee, Hoi Paik was dated Sept. 5, 2005.

His reply to me was dated Oct. 11, 2005, which is posted on the "Pagoda."

I sent a "comment on the comment" to Lee, Hoi Paik on Oct. 23, 2005 to which he responded on Oct. 27, 2005. This is also posted on the "Pagoda."

My latest reply to Lee, Hoi Paik is written today along with this e-mail.

Dear Webmaster, you are doing great job upgrading the Homepage. I am sure the entire class will appreciate. 

Keep up a good work, my best whishes,

Hong, Changgi



Dear Dr.Kang;

The piece below was sent thru PAGODA home page window prompt but I think it did not go out.


My computer is not tweaked yet to type in Korean. It will be my first task when I retire. For a moment, I have no choice but for stumble and mumble in English till then. Dr Kang (Oog) suggested to this web a while back when we first communicated. It is not an exaggeration that I soon realized there were hidden brain works in this www. of our talents that we can enjoy. That said, I did not have time to clik on every page and missed Pagoda page till Dr Konchang Choi called me today and talked about it. He asked me to go there and read his post. It is probable that he wanted my opinion and for me to chime in. I do not pretend to have understood everything discussed and transpired in the thread but I feel that the initial topic of debate was the very subject of common interest for men who have intrinsic flavor toward the power and means of politics. The rather long discourse by Dr Changi Hong rebutting Dr Hoi Paik's stabbing comment must have incited some dissent. The book by Lee itself is not supposed to be without controversy to begin with for the sake of what it has dealt. Regardless, I think we should encourage and welcome such informative discussion in open forum if we can. That level of dialog and the topic is too long tailed to be kept in pale between just four feet. Merry christmas and happy holiday to you all. //12-16-2005//

William K Joh,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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