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내 부친이 세브란스를 졸업하시고 강능도립병원에 게시다가
경성제국대학병원에 수습 의사로  김경식, 한심석, 전종휘 선생님들과 2년을 계셨고 일제시 철원 철도병원을 맡으셔  많은 환자를 고치시고 의료봉사도 열심히 하셨기에 나도 고등학교 때부터 부친을 도와 심지어는 혈관주사도 놓고 그 당시 매독환자에게 놓는 606호를 혈관에 놓는 데 세면 절대 안 됨으로 조심히 놓았지.

6.25후에 피란에서 돌아와 예과시절에는 한강인도교 다리 밑에 약 4000세대의 무작정 상경한 난민이 있어 장가용, 차절준등과 같이 이대 약대생과 연세대 의학과 학생과 내약혼자친구들이 도와주어 1958년 수재가 나서 전부 떠내려가 응암동으로 옮겨가게 되어 부친도 도와주시고 하여 난민주택을 지여 줄때까지 토요일과 주일 오후에 무료 의료 봉사를  하였지. 서울시에서 전부천막을 걷어치우고 조그만 난민 주택을 지여 주었음으로 그기는 그만두고 광나루 다리 밑에도 약500세대가 다리 밑 모래사장에 살고 있음으로 한강 백사장 때와 똑같이 가마니 깔고 19공탄 피우고 한강물 마시고 변소도 제대로 되여 있지 않아 그대로 한강에 버리고 물마시고 그 당시 주로 사용 했던 약이 설파다이아징과 섪구아니딩이었고 그나마 집에 있는 약이 다 떨어져 을지로 입구에 내무부가 있었는데 최인규 장관이 광나루건너 국회의원임으로 의대 3학년때 내가 직접 내무부에 찾아가 장관면회 왔는데 불상한 동포들이 광나루 다리 밑에서 지게지여 사는 백성들이 약이 필요하다고 도움을 요청 했드니 비서들이 측은히 보았는지 일주이후에 다시 오라함으로 찾아 갔더니 동화제약, 한독약품, 중외제약등 여러 회사에 연락을 주어  많은 약을 얻게 되여 한참 봉사를 하게 되었었다.

내가 막차로 미국에 이민 와서 47살부터 인턴 레지덴트 하느라고 고생도 많았지만 그래도 뉴욕에 후러싱병원과 뉴욕병원에  프리비지를 받아 개업 하든중 지병인 당뇨병으로 심장수술도 하고 또 잘못되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줄 알았는데 또 살아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이고  교회에서 무료 진료를 열심히 토요일과 주일오후에 함으로 많은 신도들을 영입할 수 있게 되여 하나님의 은혜로 2000여명의 감리교에서 제일가는 교회로 성장하게 되었고 그러니 신장이식을 필요로 하는 신자가 3명이나  되어서 가족만으로 맷취가 안되어 서울 한양대학병원으로 보내게 되어 16명이나 사랑의장기를 주고받게 되었고 모두 성공적으로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에는 사랑의집 짓기를 대단위로 하게 되여 봉사를 45명을 거느려 2001년에 아산에 가서 82채 사랑의 집을 짓는데 또 의료 봉사를 하였지.  그 당시 테타누스 주사 한국에 없었는데 내가 충분히 가지고 가서 요긴히 쓴 생각이 낳고 또 8곳에 사랑의 집짓기를 돌아보며 파주에서 시작하여 대구 진주 영산강  아산 등을 돌고 그해 9월7일에 돌아와 보니 911뉴욕쌍둥이 빌딩이 무너지는 사건이 터졌지.  나는 그 삘딩에 꼭대기 식당 윈도옵 월드식당에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가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즐긴 경험이 많았지.

그리고 부친 덕에 금강산도 봄, 여를 ,가을 겨울 사철을 내금강역에서 가까운 장안사
근처 여관에 묵으면서 4째 여동생까지 구경을 하였는데 윤일선 교수께서 해마다  금강산구경하시고 경성으로 돌아가시는 길에 쌀을 큰 배낭에 가득히 가져가는 것을 보아왔지 또 숙부 되시는 최윤식 교수 최지철 최지향 최지훈형들도 금강산구경후 배낭에 쌀을 가지고 가는 것을 보았지. 그런데 8.15해방후 38선 이북이 되여 대지주라 공산당한테 쫓겨나게 되었는데  개성을 빼앗기고 철원 역을 중심으로  디엠지가 되여 10만평을가지고 있었음으로 반은 다행이 남쪽에 있어 일부 찾게 되여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되었지만  모친께서 문서들을 배에 차고 월남하여  문서가 있음으로 찾아서 좀 많은 보탬이 되었지만 1982년에 모친유언이  전부하나님께 바쳐서 첫째 부친 최윤오 원산 기념교회를 짓고  사랑의집을 지여 북한 동포들을 돕고 무료 진료를 할 수 있는 크리닉을 짓는데 다 바치라는 유언서에 따라  교회를 물색중 인천내리 교회가 가장 적당한 교회로 생각되 여 형제들을 다 뫃아 놓고 다 좋다는 의견이 있어 그 교회가 아펜셀라 선교사님이 처음 인천에 오셔서 새운 교회이고 현재 단임목사님이 조직신학으로 피회디를 받으셧고 50전임으로 앰비셔스하시고 가장일 많이 하신분임으로  전 형제들의 동의하에 헌납하게 되었읍니다 .

인제 마지막남은재산 뉴욕 두개 오피스를 팔 수 있게 되여 십일조 30만불을 여기저기 기부하면 내 인생이 끝을 고 할 것 같아서  이런 이야기를 장화하게 하였습니다.
1997년에는 회갑 기념 논문집도 내었고  영국에서 시작하여 네댈랜드 라인강을 딸아
독일 스위스 이태리모나코 불란서등을 여행한 것도 잊을 수 없는 일이고
여행 중에도 사랑의장기를 주고받는 분들을 위해서 가는 곳 마다 서울 한양대학병원에
전화하여 기도 해주던 생각이 까맣게 떠올습니다.  뉴욕에 있을 때는 기독교 방송을
통해서 6년 동안 의료강좌를  하였고 이한수 동기와는 우울증에 관하여 2회나 했으며
최길수 교수가 뉴욕에 왓슬댸는 신경외과 뇌종양등 여러가지를 대담한 기역이있고
또 한혜원교수와 한수웅이가 같이 와서 586명 간염조사를 하였는데 48명이 보균자가
나타나 반수이상이 사망하는 것을 보았고 나중에 인터후 인터패론이나와 치료 되는 것도
보앗지. 하여튼 한없는 변화 무쌍한  70고개를 지나고 있습니다.

최지원 봉사기억 담
우리는 감사한다
Mercy Ministries and Philanttro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