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고다공원 - 2

10월 27일


홍창기 형: 


       이승만이 소위 井邑 발언에서 남한단독 정부라도 세워야 겠다고 하기 전엔 아무도 반쪽짜리 정부를 생각한 사람이 없든걸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자 결국 남한엔 ”대한민국”, 뒤따라 이북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 들어서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된 뒤에도 “한반도는 둘로 갈라져야 한다”고는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서로 자기가 “남북한” 을 합한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라고 우길지언정 한반도에  두 정부가 있어도 좋다고 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처음엔 서로 협상에 의해 하나의 정부로 통일할려는 노력이 있었으나 얼마 안가 무력에 의할수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린것은 이북의 김일성이나 남한의 이승만이나 마찬가지 였습니다. 이승만도 “북진 통일”을 웨쳤고 국방장관 신성모는 이북과 전쟁을 하게되면 점심은 평양에 가서 먹고 저녁은 신의주에 가서 먹는다고 큰 소리 쳤습니다. 38선 근처에서의 무력충돌은 이미 1949년 여름에 옹진반도를 중심으로 빈번히 발생하였고 상당 부분이 남한측에 의해서 야기 되었으며 8월 23일에는 남한의 초계정 몇척이 대동강 바로 위 몽금포 까지 올라가 북한 어선 4척을 침몰 시키는 사건까지 발생했었습니다. (Origins of the Korean War by Bruce Cumings, page 53-56 참조) 김일성이가 “후원세력인 중국과 쏘련을 설득” 했다고 하셨는데 이승만은 그의 “후원세력인 미국을 설득” 하지 않은줄 아시나요. 그도 워싱톤에 가서  “북진통일”하도록 비행기등 전쟁물자를 도와 달라고 애걸한걸 저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신통한 반응을 못 얻자 전투기 구입 모금운동을 거국적으로  전개 “Mustang” 전투기를 몇대 사와 크게 전시하는걸 신문에서 본 기억이 납니다.
      
       해방후 한반도 상태가 이랬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북의 김일성은 인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자기 반대파를 갖은 구실로 억누르거나 제거함으로서 정권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데 반해 이승만은 전국민의 열열한 지지를 기반으로  미국과 “협의” 하여 북침을 전개, 항상 38선상에서 교란을 일삼는 “인민군”을 쳐 부시고 삽시간에 압록강 까지 진격, 통일을 완수 했다면 홍형은 이승만을 뭐라고 평가 하실껀가요. 그놈(이승만)은 미국과 짜고 동족을 살상한놈이니 죽여 마땅하다고 하실껀가요.
      
       그런데 자기는 죽어도 “인민”을 버리고 도망 가지 않겠노라고 “인민” 에게 약속한 김일성이 국군 대포소리가 평양에 채 들리기도 전에 대동강을 건너, 그리고 대동강 다리를 폭파 시키고, 만주로 뺑소니 쳤을뿐만 아니라 쏘련에게 나 살려달라고 애원, 쏘련군을 이북에 끌어드렸다고 칩시다. 그래서 국군을 38선 이남으로 간신히 밀어내준 쏘련군을 북한에 붇드러 놓고는 그들이 우리를 살려준 은인이라고  반세기 이상 인민들이 믿도록 만들어 놨는데 “인민교육 위원회”란 놈들이 “citical thinking” 을 할 준비가 안된 학생들에게 쏘련이 우리를 살려준 은인이 아니라  우리의 통일을 방해한 자라고 생각을 바꿔놨다고 칩시다.  홍형은 이들 “인민교육 위원회” 선생들이 역사를 외곡했다고 분개하실건가요.
      
       거듭 말하기 쑥스럽지만 무엇이 외곡이고 무엇이 진실인지는 사실(역사)을 알아야 되고 알려면 문헌을 뒤적여야 됩니다. 내 머리에 들어있는 관념만 가지고 판단하는것은 지극히 위험합니다. 형의 전공분야에 대해 제가 journal 하나 읽지 않고 이렇다 저렇다 하면 말이 됩니까.  解放前後史의 認識 이 너무 방대해 읽을수 없으시다면 조금 짧고 읽기 쉬운 한홍구 씨가 쓴 대한민국史를 읽으시는게 어떨까 합니다. 세권으로 되어 있으며 약 300 페이지 짜리들입니다.  그리고 김일성과 스탈린, 모체퉁 그리고 트루만 이 한국전쟁 전후를 두고 무슨 재주들을 부렸는가를 아시려면  Richard C. Thornton 이 쓴 Odd Man Out – Truman, Stalin, Mao, and the ORIGINS of the KOREAN WAR 를 읽으십시요. 한국전쟁은 미국의 대만정책과도 직결되어 있었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요. 그리고 건강하고 행복하십시요.

이회백

목차

친애하는 이회백학형2
(홍창기)

홍창기형 2 (이회백)

이회백학형에게 3
(홍창기)

홍창기형 3 (이회백)
친애하는 李회백 학형:

지난 번 내 독후감에 대한 李형의 comments를 받아 보고서 내가 또 response를 하나 마나 망설이다가 우리 둘이 리영희의 ”대화”를 읽고 의견을 나누는 것을 우리 동기 친구들 중 몇이 알고 있기에 그대로 침묵하는 것 보다는 comments on your comments를 쓰기로 해서 아래의 글을 보냅니다.

1.리영희의 생각에 agree(동의)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분이 반대하는 미국式 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가 완벽(perfect)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리영희의 unbalanced view를 비판하는 것이고, 그의黑白 二分法的 思考에 대한 비판을 하는 것이지요. 黑 아니면 白이라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varying gradation의 gray로 현실(reality)을 보는것이 더 정확하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완전한 黑이나 완전한 白은 어쩌면 인간사에는 없든지 아주 드물 것입니다. 완벽(perfect)하지 않기 때문에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게 마련이고, 그러니 사물을 비교할 때는 장단점을 같이 보아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보다 완벽에 가까운 것, 아니면 less of evil을 선택하는 것이 우리가 보통 살아가는 모습이지 않습니까? 李형이 나열한 unbalanced comparison을 하는 다른 사람들이 여럿 있다는(Gere라든가 어떤 신학자 같은) 사실은 consistent하게, unbalanced view를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말을 할 수 있게는 할 지언정 그런 사람이 많다고해서 그 때문에 리영희가 unbalanced view를 가졌다는 비판을 피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리영희는 healthy skepticism을 결하고, new information이 available해져도 가졌던 생각을 change하지 않는 ideologue이기 때문입니다. 모택동의 혁명을 그렇게 높이 평가 해온 사람이 지금의 중국(공산주의는 말 뿐이고 극단의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인 오늘의 중국)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는 stubborn ideologue라는 것이 내 생각입니다.
2.왜 남한의 많은 젊은 이들이 미국을 adversary로 보고 북한을 ally로 생각하게 되었는가 하는 문제는 “全敎組”라는 단체를 알아야 이해를 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 단체에 속한 의식화된 교사들이 지난 오랜 세월동안 비공식적으로, 최근에 와서는 공공연하게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에서 어린 학생들의 사고를 바꾸어 놓은 결과입니다. 그래도, 이희경형의 자료에 의한다 해도, 3분의 1 가량의 젊은 이들이 그렇게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오히려 기이한 일이며, 희망적인 징조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한국의 교육이 예나 지금이나 critical thinking을 훈련 시키는데 소흘히 해 왔다는 것을 대학교육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늘 체험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3.북한이 ally 라고 생각하는 지금의 남한 젊은이들이 “민족共助”를 부르짓는, 주체사상에 물들은, nationalism을 내세우는 전교조 교사들의 영향을 받으며 커온 사람들입니다. 민족과 국가를 위한다고 강력히 주장하는 사람들을 나는 skepticism을 가지고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민족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인류는 많은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軍國일본이 그랬고, Hitler가 그랬고, 위기에 처한 Stalin은, 리영희가 그렇게 理想으로 생각하는 Comm Intern의 idealism을 버리고 Slav민족에 호소하고, 모택동도 국제공산당으로 부터 일찍감치 독립했지요. 김일성과 김정일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주체사상을 만들어 철저한 nationalism으로 국민을 洗腦시킵니다. 지금 북한이 민족공조를 내세우고 노무현의 무리들이 그에 부화뇌동하는 것도 모두 자기들의 이익, 권력유지를 위해서이지, 국민이 국민자신의 진정한 well-being을 잊어버리게 하는 술책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는 patriotism이나 nationalism을 강하게 내세우는 사람은 일단 조심스럽게 보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이형이 그랬지요. “문제는 ‘us and them’ 의 경계를 어느 선에서 긋느냐하는 것이다.”라고…
4.리영희가 말하는 자유는 개인의 자유가 아니라 “민족자결”과 같은 자유를 뜻하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하셨는데, 개인의 자유없이는 민족의 자결이나 자유는 무의미하지 않겠습니까? 평등에 관해서도, 지금 노무현정권이 우선시하는 평등이나, 공산주의에서 말하는 평등은 기회의 평등이 아니고, 결과의 평등을 말하는 것이라서 아주 위험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력으로, 타고 난 재능과, 주어지는 기회나, 運을 잘 이용하는 사람이 더 잘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노력 안 한 사람도 결과적으로 꼭 같이 잘 산다는 것은 평등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 내 생각입니다.

오늘은 이만 줄이지요. 안녕히 계십시오.

홍 창 기

2005-10-30

이회백 학형에게:

10 월 27일자 편지 잘 받아 보았습니다. 지난 번의 제 편지 (10월 23일)는 전교조가 6.25 전쟁에 대하여 어린 학생들에게 어떻게 잘 못 가르치고 있는가에 대한 것을 지적한 것이었습니다. 즉, 일반교과서에는 북한이 남침했다고 되어 있는 것을 전교조의 일부 교사들은 남한이 북침했다고 외곡해서 가르쳤고 그런 가르침은 반미 정서 조장에 일조했다는 것을 뜻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의 형 편지를 보면, 일부 전교조 교사의 그러한 가르침을 잘 못된 가르침이라고 하는 제 말에 동의 할 수 없다는 것 처럼 보이는데 제가 잘 못 이해한 것인가요?  6.25 전쟁이 북침에 의해 시작되었다는 것을 형도 외곡된 역사기술이라고 생각하시는 것은 설마 아니겠지요?

역사적 사실을 논할려면 공부 좀하고 말하라고 형은 여러가지 책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물론 professional political scientist가 아니기 때문에 primary sources를 발굴해 가면서 분석하고 결론을 내릴 만한 능력도 없고, 이제와 그런 연구 (공부)를 시작할 생각도 없습니다. 하나의 amateur로서, 그러나 우리나라의 과거와 미래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고, 염려하는 한 구성원으로서, secondary/ tertiary source에 의존할 수 밖에는 없습니다. 다만 secondary/tertiary source를 접할 때에는 여러관점에서 describe하는 책을 보려고 노력 할 뿐입니다. 한 쪽으로 치우친 견해는 “외곡”되었다는 비평을 받기 쉽기 때문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리영희씨도 unbalanced observation을 했다고 제가 비평했던 것입니다.
형의 말씀처럼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도 personal attack로 take하지 않고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이만 줄이고, 내내 검강하십시요.

홍 창 기

P.S. 우리동기동창 home page의 web master (강창욱 학형)에게 보낸 e-mail을 첨부합니다.

November 1.2005



홍창기 형:

       안녕하십니까. 지난 10 월 30일날 보내주신 편지는 잘 받아 보았습니다.
일반 교과서에서는 북한이 남침했다고 되어 있는 것을 전교조의 일부 교사들은 남한이 북침했다고 외곡해서 가르쳤다는 것을 지적 한것이라고 하셨고 저에게 이런 전교조에 동조한단 말이냐고 물으셨습니다.
우선 죄송한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전교조에 대해서 아는바가 전혀 없고 전교조가 남침이냐 북침이냐를 문제 삼는다는것은 형에게서 처음으로 들었읍니다.

       한국전쟁이 이북의 남침으로 인해 큰 전쟁으로 번진것은 너무나 명백하고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기에 더 이상 논할 필요가 없슬걸로 압니다. 
       그러나 이 전쟁이 누구에 의혀 먼저 시작됬느냐로 따진다면 남측에 의한 북침이란 말도 성립될수 있다 하는것입니다. 이것은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기에 한국전쟁을 연구한 학자의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한 예로 “해방 전후사의 인식” 제 4권 138 페이지에서 139 페이지에 있는 일부를 옮깁니다. 이 글은 김명섭 이라고 하는 연세대학교 석사과정을 마친(1980년대에) 사람이 쓴 글입니다.

       메릴은 당시의 군사적 충돌이  특히 남한측의 지휘관에 의해 계획적으로 주도된 경우가 많았고, 미군사고문단의 로버츠(Roberts) 단장이 남한측 군대의 ‘보이스카웃 같은 전술’이 초래할 수 있는 커다란 전란에 대해 우려하고 있었다고 쓰고 있다.  이와 같은 메릴의 언급은 남한정부의 정보계통에 종사했던 최덕신의 다음과 같은 진술에 의해서도 뒷바침되고 있다. “당시 남한의 지휘관들은 거의가 북한에서 남하한 사람들이거나 공산주의를 증오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1950년 6월 25일 이전에 이미 수차례에 걸쳐서 3,4마일 가량 깊숙히 북한을 침공했었다. 그와같은 행동 정향의 배후에는 이승만 정부의 묵인 혹은 적극적인 명령이 뒷받침 되고 있었다. 남한의 해병사령관을 지낸바 있는 이용운에 따르면 당시 남한의 해군부대에 의해 행해진 몽금포 에 대한 공격은 국방장관 신성모의 구체적인 명령에 의한 것이었다.
       이처럼 당시 남한정부는 호전적인 통일조선을 표방하면서 간헐적인 행동을 실천에 옮기고 있었다. 그러면서 이들은 전면적인 공격의 순간을 모색하고 있었는데 이때 무엇보다 문제로 되는 것은 바로 미국의 지원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이승만은 1949년 9월 30일 그의 미국인 정치고문 올리버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공격행동을 취하여 우리에게 충성스러운 북한 공산군과 합세, 그 잔당들을 평양에서 소탕해야 할 가장 심리적인 호기라고 나는 열열히 느끼고 있소. 우리는 김일성 부하들을 산악지대로 몰아내서 그 곳에서 그 자들을 서서히 굶겨 항복시켜야 될것이오. ……..여기저기 영향력 있는 몇몇 인사들과 조용히 접촉을 가지시오. 그리고 그들의 지지와 찬성을 얻도록 합시다.

       같은 책 192 페이지에 있는 설명에 의하면 이 편지의 사본은  이후 북한군의 서울 점령 당시 노획되어 소련의 몰로토프에 의해 남한측이 먼저 전쟁을 일으켰다는 증거물로 제출되기도 하였다. 당시 미국의 유엔대표였든 오스틴은 이 편지가 결코 실재한 것이 아니고 소련에 의해 조작된 상상의 소산일 뿐이라고 주장 했었다. 그러나 이 편지의 수신자인 올리버는 이후 이 편지가 자신이 받았던  서한의 사본임을 확인 하였다.

       그러니 “남침” 만이 진실이고  “북침”은 거짓이라고 논할수 없다는게 형과 저의 견해 차입니다.

       남한이든 북한이든 한반도가 두쪽으로 남아 있어야 된다고 하지는 않았고 또 통일을 성취 하는 방법으로 남한도 평화적인 협상이 아닌 무력을 택했었다는것은 이승만이 그의 정치고문 올리버에게 보낸 편지로서도 알수있을뿐 아니라 또 실지 무력을 행사했다는 것은 당시 남한 고위직에 있든 인사 그리고 군사 고문단 단장 Roberts 에 의해서도 알수 있는것입니다. 
       
       따라서 “남침”이 아니고 “북침”이다 또는 “남침”은 언급함이 없이 “북침”만을 일부 전교조 교사가 가르쳤다면 분명히 외곡입니다. 같은 맥락으로 “북침”에 대한 사실은 전혀 언급이 없이 “남침”만 내세운 교과서도 문제 인것 입니다. 이것이 제가  한국교과서를 일본 교과서의 외곡과 비유한 이유입니다.

       그러면 너는 도대체 전교조를 알지도 못하면서 그들이 어떻게 했다고 믿었기에 그들이 외곡하지 않았다고 믿었느냐고 물으실것입니다. 남북한 대결을 지속, 공고히 할려는 교육이 아니라 화해의 길을 걸어가야 된다고 가르치는 교육이였다고 믿은 것입니다. 옛날 잘잘못을 들추는게 아니라 외세를 물리치고 우리끼리 통일을 성취하자고 가르친다고 믿은 것입니다. 이것은 김대중 대통령이 김정일과 맞났을때에 선언한것 아닙니까. 그 정신에 그들도 따른것이라고 본 것입니다.

        우리 주위를 한번 살펴 봅시다. “Remember Pearl Harbor!” 하든 미국인들은 자기들 태평양 함대를 기습, 전멸시킨 일본을 이미 6.25 직후 적대관계에서 상호 이용상대로 바꾸고 얼마 안가서 평화조약을 체결 했습니다. 역대로 원수이든, 그리고 일차, 이차 대전을 통해 막대한 희생을 치룬 불란서와 독일도 앞으로는 영원히 적대하지 말자고 맹세 했습니다. 불란서, 그리고 미국과 그렇게 격렬하게 싸운 비에트남도 벌써 불란서는 물론 미국과도 국교를 텄습니다. 서로 앙숙이고 몇차례 전쟁을 치렀고 원자무기까지도 불사 하겠다는 인도와 파키스탄도 이번 지진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위해 국경을 터 서로 왕래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단일민족, 단일언어. 이씨조선만 쳐도 500 년 이상을 단일국가로 지나던 우리는 왜 이렇습니까. 한번 원수 졌으면 영원히 원수여야 합니까. 그리고 이제는 옛날 원한 접어두고 화해하자는 자들은 영원히 박해 당해야 하나요?
그렇치 않다고 선생들은 가르친것으로 저는 믿은 것입니다.              
     
       오늘 N.Y. Times 보니 내년 아시아 올림픽 그리고 2008년도 베이징 올림픽에 남북 단일팀 형성 하자는데 합의 보았다는 소식 들었습니다. 이미 제 3국가와의 경기, 특히 일본과의 경기에는 남한선수든 북한선수든 서로 응원하고 있다고 하면서. 감격의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국호는 Korea(아무 군더덕이 붙임 없이), 국가는 아리랑, 깃발은 흰 바탕에 파란 무늬의 한반도.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당장 달려가 응원 하고 싶습니다.

       더 이상은 할 말이 없습니다.
      
       꾹 참고 들어주신 형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형의 영원한 친구 이회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