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ember 1.2005
홍창기 형:
안녕하십니까. 지난 10 월 30일날 보내주신 편지는 잘 받아 보았습니다.
일반 교과서에서는 북한이 남침했다고 되어 있는 것을 전교조의 일부 교사들은 남한이 북침했다고 외곡해서 가르쳤다는 것을 지적 한것이라고 하셨고 저에게 이런 전교조에 동조한단 말이냐고 물으셨습니다.
우선 죄송한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전교조에 대해서 아는바가 전혀 없고 전교조가 남침이냐 북침이냐를 문제 삼는다는것은 형에게서 처음으로 들었읍니다.
한국전쟁이 이북의 남침으로 인해 큰 전쟁으로 번진것은 너무나 명백하고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기에 더 이상 논할 필요가 없슬걸로 압니다.
그러나 이 전쟁이 누구에 의혀 먼저 시작됬느냐로 따진다면 남측에 의한 북침이란 말도 성립될수 있다 하는것입니다. 이것은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기에 한국전쟁을 연구한 학자의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한 예로 “해방 전후사의 인식” 제 4권 138 페이지에서 139 페이지에 있는 일부를 옮깁니다. 이 글은 김명섭 이라고 하는 연세대학교 석사과정을 마친(1980년대에) 사람이 쓴 글입니다.
메릴은 당시의 군사적 충돌이 특히 남한측의 지휘관에 의해 계획적으로 주도된 경우가 많았고, 미군사고문단의 로버츠(Roberts) 단장이 남한측 군대의 ‘보이스카웃 같은 전술’이 초래할 수 있는 커다란 전란에 대해 우려하고 있었다고 쓰고 있다. 이와 같은 메릴의 언급은 남한정부의 정보계통에 종사했던 최덕신의 다음과 같은 진술에 의해서도 뒷바침되고 있다. “당시 남한의 지휘관들은 거의가 북한에서 남하한 사람들이거나 공산주의를 증오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1950년 6월 25일 이전에 이미 수차례에 걸쳐서 3,4마일 가량 깊숙히 북한을 침공했었다. 그와같은 행동 정향의 배후에는 이승만 정부의 묵인 혹은 적극적인 명령이 뒷받침 되고 있었다. 남한의 해병사령관을 지낸바 있는 이용운에 따르면 당시 남한의 해군부대에 의해 행해진 몽금포 에 대한 공격은 국방장관 신성모의 구체적인 명령에 의한 것이었다.
이처럼 당시 남한정부는 호전적인 통일조선을 표방하면서 간헐적인 행동을 실천에 옮기고 있었다. 그러면서 이들은 전면적인 공격의 순간을 모색하고 있었는데 이때 무엇보다 문제로 되는 것은 바로 미국의 지원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이승만은 1949년 9월 30일 그의 미국인 정치고문 올리버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공격행동을 취하여 우리에게 충성스러운 북한 공산군과 합세, 그 잔당들을 평양에서 소탕해야 할 가장 심리적인 호기라고 나는 열열히 느끼고 있소. 우리는 김일성 부하들을 산악지대로 몰아내서 그 곳에서 그 자들을 서서히 굶겨 항복시켜야 될것이오. ……..여기저기 영향력 있는 몇몇 인사들과 조용히 접촉을 가지시오. 그리고 그들의 지지와 찬성을 얻도록 합시다.
같은 책 192 페이지에 있는 설명에 의하면 이 편지의 사본은 이후 북한군의 서울 점령 당시 노획되어 소련의 몰로토프에 의해 남한측이 먼저 전쟁을 일으켰다는 증거물로 제출되기도 하였다. 당시 미국의 유엔대표였든 오스틴은 이 편지가 결코 실재한 것이 아니고 소련에 의해 조작된 상상의 소산일 뿐이라고 주장 했었다. 그러나 이 편지의 수신자인 올리버는 이후 이 편지가 자신이 받았던 서한의 사본임을 확인 하였다.
그러니 “남침” 만이 진실이고 “북침”은 거짓이라고 논할수 없다는게 형과 저의 견해 차입니다.
남한이든 북한이든 한반도가 두쪽으로 남아 있어야 된다고 하지는 않았고 또 통일을 성취 하는 방법으로 남한도 평화적인 협상이 아닌 무력을 택했었다는것은 이승만이 그의 정치고문 올리버에게 보낸 편지로서도 알수있을뿐 아니라 또 실지 무력을 행사했다는 것은 당시 남한 고위직에 있든 인사 그리고 군사 고문단 단장 Roberts 에 의해서도 알수 있는것입니다.
따라서 “남침”이 아니고 “북침”이다 또는 “남침”은 언급함이 없이 “북침”만을 일부 전교조 교사가 가르쳤다면 분명히 외곡입니다. 같은 맥락으로 “북침”에 대한 사실은 전혀 언급이 없이 “남침”만 내세운 교과서도 문제 인것 입니다. 이것이 제가 한국교과서를 일본 교과서의 외곡과 비유한 이유입니다.
그러면 너는 도대체 전교조를 알지도 못하면서 그들이 어떻게 했다고 믿었기에 그들이 외곡하지 않았다고 믿었느냐고 물으실것입니다. 남북한 대결을 지속, 공고히 할려는 교육이 아니라 화해의 길을 걸어가야 된다고 가르치는 교육이였다고 믿은 것입니다. 옛날 잘잘못을 들추는게 아니라 외세를 물리치고 우리끼리 통일을 성취하자고 가르친다고 믿은 것입니다. 이것은 김대중 대통령이 김정일과 맞났을때에 선언한것 아닙니까. 그 정신에 그들도 따른것이라고 본 것입니다.
우리 주위를 한번 살펴 봅시다. “Remember Pearl Harbor!” 하든 미국인들은 자기들 태평양 함대를 기습, 전멸시킨 일본을 이미 6.25 직후 적대관계에서 상호 이용상대로 바꾸고 얼마 안가서 평화조약을 체결 했습니다. 역대로 원수이든, 그리고 일차, 이차 대전을 통해 막대한 희생을 치룬 불란서와 독일도 앞으로는 영원히 적대하지 말자고 맹세 했습니다. 불란서, 그리고 미국과 그렇게 격렬하게 싸운 비에트남도 벌써 불란서는 물론 미국과도 국교를 텄습니다. 서로 앙숙이고 몇차례 전쟁을 치렀고 원자무기까지도 불사 하겠다는 인도와 파키스탄도 이번 지진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위해 국경을 터 서로 왕래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단일민족, 단일언어. 이씨조선만 쳐도 500 년 이상을 단일국가로 지나던 우리는 왜 이렇습니까. 한번 원수 졌으면 영원히 원수여야 합니까. 그리고 이제는 옛날 원한 접어두고 화해하자는 자들은 영원히 박해 당해야 하나요?
그렇치 않다고 선생들은 가르친것으로 저는 믿은 것입니다.
오늘 N.Y. Times 보니 내년 아시아 올림픽 그리고 2008년도 베이징 올림픽에 남북 단일팀 형성 하자는데 합의 보았다는 소식 들었습니다. 이미 제 3국가와의 경기, 특히 일본과의 경기에는 남한선수든 북한선수든 서로 응원하고 있다고 하면서. 감격의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국호는 Korea(아무 군더덕이 붙임 없이), 국가는 아리랑, 깃발은 흰 바탕에 파란 무늬의 한반도.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당장 달려가 응원 하고 싶습니다.
더 이상은 할 말이 없습니다.
꾹 참고 들어주신 형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형의 영원한 친구 이회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