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고다공원 - 3

목차


김추기경특별회담 (이희경)

미국은 이기주의? (김영철 )
['정체성 혼란' 한국號 어디로가나] ▒
김수환추기경 특별회견


김수환(金壽煥) 추기경은 20일 천주교 조선교구 초대교구장 바르텔레미 브뤼 기에르 주교 추모 행사 참가 차 내한한 프랑스 주교 및 신부들과 서울 종로구 혜 화동 주교관 근처 식당에서 오찬을 함께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들을 배웅하고 주교관으로 돌아온 김 추기경은 본보 취재진을 만나 대한민 국의 정체성 위기, 공직자의 말 뒤집기, 과거사 청산 문제, 천주교의 생명윤리운 동 등 폭 넓은 이슈들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1시간여 동안의 인터뷰
내내 조용조용한 어조로 말했으나 대한민국의 정체성 위기에 이르러서는 가 슴 속 깊이 있는 생각을
토해 내듯 어조가 단호했다.

-강정구 교수의 발언파문과 관련해 국내의 이념갈등과 혼란이 확산되고 있는 데요.


















이것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의 문제와 관련돼 있다고 봅니다. 강정구 교수가 말 한 요지는 '6·25전쟁은 김일성이 일으킨 남침'이었고, '6·25전쟁 당시 미국이 참전하지 않았다면 한 달 내에 통일이 됐을 것', '그렇게 되지 못한 것이 아쉽고 , 이 때문에 미국이나 맥아더가 원수다'라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강 교수가 말한 내용 중 6·25전쟁이 '남침'이었다는 말은 그쪽 진영의 사람들 입에서는 오랜만에 듣는 말인 것 같습니다. 그 언저리에 있는 사람들은 6·25전 쟁에 대해 늘 북침이었다고 말해 왔지요. 소련도 북한을 따라서 북침이라고 했고 요. 그런데 '6·25가 남침'이라는 말이 강정구라는 사람을 통해서 처음으로 실토 됐어요. 그 말은 옳은 말입니다.


또한 강 교수 발언 중 인천상륙작전 때문에 그들의 의도가 좌절됐다는 것도 사 실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아쉽다고 말하는 것은 조선인민공화국이 되지 않은 것이 아쉽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대한민국이 그 때 무너졌어야 하는데, 무너지지 않은 것이 아쉽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 때 미국이 참전하지 않고, 맥아더가 인천 상륙작전을 하지 않았으면 실제로 그랬을 겁니다.


당시 저는 부산까지 피란 갔었는데 사람들은 실제 그런 위기를 느끼고 있었어 요. 부산과 대구라는 아주 조그만 여백에만 대한민국이 남아 있었지요. 며칠 내에 낙동강전선이 무너지고 오도 가도 못하게 될 것 같은 위기에서 살고 있었어요. 그러다 맥아더 장군이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 함께 피난 갔던 신부님들은 모두 만세를 불렀습니다. 마치 '제2의 광복'을 맞이한 것처럼 그 렇게 기뻐했지요. 그것으로 우리 대한민국이 살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 은 그때 대한민국이 무너지지 않았던 것을 그렇게 아쉽게 생각하고 있어요.

대한민국이 조선인민공화국이 안 된 것을 아쉽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대한 위기가 아닌가요.


만일 그 때 대한민국이 무너졌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나 같은 사람은 살아남지 못했을 겁니다. 우리 신부님들도 다 죽었을 겁니다. 실제로 6.25 전에 평양에서 나와 함께 신학교에서 공부했던 대학 동창 신부 3명이 죽음 을 당했고, 잘 아는 선배 신부님들도 다 죽음을 당했습니다. 6.25 전쟁 발발 후 남측으로 피란 온 이후에도 북한군의 진격에 따라 숨어 있던 동창, 후배, 선배 신 부님들이 발각돼 모조리 끌려가서 다 죽었습니다. 부산까지 왔다고 하면 같은 일 이 일어났을 겁니다. 만일 현재 우리나라가 대한민국이 아니라 인민공화국이라고 가정해 보세요. 우리가 보고 있는 천주교회는 이렇게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김수환도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 마찬가지로 다른 신부님들도 없 었을 것입니다. 오늘의 대한민국의 모습도 없었을 겁니다.


강 교수가 이렇게까지 심각하게 생각하고 말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렇게 여과 없이 말한 것은 대한민국이 없어지기를 바랐고, 맥아더가 인천상륙작전 에 성공해 인민공화국을 세우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기 때문일 겁니다.


대한민국이 없었다면 한반도는 북한 인민공화국의 지배 하에 있었을 겁니다. 그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상상해봅시다. 종교의 자유도 없고, 언론의 자유도 없고 , 신체의 자유도 없을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강제수용소에 갇혀서 숨도 쉬지 못 하는 상황에서 김정일의 지배 하에 살고 있을 겁니다. 대학교수라는 지성인이 어 떻게 자유가 없는 김정일의 독재체제 하에 있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하는지."


-강 교수 논란에 대한 정부의 개입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강 교수에 대해 국가보안법으로 다스리려고 할 때 대한민국의 헌법을 존경하 고 지켜야 하는 제대로 된 위정자라면 이 문제를 가장 심각하게 생각하고, 앞장서 서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위정자가 이런 사람을 다스리는 검찰에 대해 사상의 자유, 언론의 자유, 인권을 보호한다고 견제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북한에서 는 수없이 많은 사람의 인권이 무시되고 짓밟히고, 감옥에 가고, 죽음까지도 당합 니다. 이러한 북한의 인권에 대해서는 아무 말을 안 하는 사람들이, 인민공화국이 안 된 것을 아쉬워하고 대한민국이 아직도 존재한다는 것을 아쉬워하는 사람의 인권을 보호하겠다고 합니다. 청와대가 나서고, 장관이 나서는 현상을 우리가 어 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참으로 혼란스럽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현재 정말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안에 살고 있는지, 간판만 대한민국이고 지배하는 사람들은 영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는지 분간하기 어렵습니다.


어떤 때는 (위정자들에게) 솔직히 말해 달라고 부탁하고 싶습니다. 당신들이 대한민국을 어디로 이끌고 가려하는가라고. 북한이 '우리는 하나다'며 민족만을 앞세워 선전하는 통일로 이끌어 갈 것인가. 자유민주주의도 없고, 시장경제도 보장 안 되고, 개인 인권도 무시되는 체제인데 도 '민족'이라는 이름 때문에 그렇게 통일이 돼야 하는가….


통일은 누구나 소중히 생각하고, 누구나 염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통일은 정말 남이나 북이나 모든 국민이 사람답게 생각할 수 있고, 말할 수 있고, 자유 를 누리면서 살 수 있는 통일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다'고 외치면서 한반도 기를 흔들면 순간적으로 감정적으로 반짝 기쁠 뿐입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뭐가 될지도 모르는, 자칫 잘못해서는 모두가 김정일 체제하에서 살게 되는 그런 의미 의 통일을 우리는 바라지 않습니다. 그것이 통일이라면 우리는 모든 것을 다해서 막아야 합니다.


대통령을 포함해 청와대에 계신 분들이 수고가 많으신데 이런 의문을 풀어 주 기 바랍니다. 어째서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대한민국을 위기에서 살린 사람을 원 수나 적으로 보고, 결과적으로 현행법에 저촉되는 말을 한 사람을 청와대와 장관 이 나서서 그렇게 보호하는가. 우리 모두가 알아들을 수 있게끔 그 까닭을 말해 주기 바랍니다.


정말 걱정입니다. 내 스스로 생각하기에 이대로 가면 우리가 적화통일 될 수도 있습니다. 나 같은 사람은 이제 살 만큼 살았으니까 별 문제 없습니다. 나 같은 사람은 벌써 제거대상 리스트에 들어가 있을 겁니다. 그러나 현재 이 땅에 사는 국민 모두가 어떤 처지에 놓이게 될는지, 참으로 암담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이른바 군사독재 아래에서도 여러 가지 어려움을 딛고 나름대로 인권과 정의를 위해서 노력해왔습니다. 지금 현재 386세대로 불리는 지배세력만 (민?


이희경 제공  (10-26-2005)

미국은 이기주의 때문에 참전했나 ?
역사학도 날 짜 2005/10/26 (20:56)
미국인이 이해하는 냉전의 역사와 한미 관계
(natizen.com에서 퍼옴)

미국은 한국보다 200년 앞선 민주주의 역사를 가진 나라이지만 여성에게 참정권이 주어진 시기는 한국과 동일한 1940년대입니다. 한국에서는 민주주의가 시작된 첫날부터 주어졌던 여성 참정권이 미국에서는 근 200년 걸린 긴 여정이었습니다. 이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 는가요? 해방 정국이나 냉전이 시작된 시점은 미국에서도 민주주의가 여전히 발전 하고 있었던 시기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한번쯤은 미국인의 시각에 서 냉전의 시대 배경과 한미 관계를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흔히 무식하 고 미개한 한국 좌익은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한국전에 파병했다고 주장합니 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1950년은 미국이 처음으로 살기 좋은 나라였던 시절 이었습니다. 19세기 미국은 유럽인들에게 멸시받던 나라였습니다. 1920~1930년대 에는 거리에 실업자가 넘치는 대공황의 터널이 있었습니다. 1940년대에는 2차 대 전 전쟁터마다 미군이 파병되어 죽어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1940년대 후반에 겨 우 살만한 나라가 되나 싶더니 한국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한국 전쟁 때 확인된 미군 전사자 수만 5만 4천이요, 아직은 생사를 알지 못하는 실종자 수가 부지기수요, 허다한 참전용사들이 평생은 중환자실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이라크 전 참전 2년에 전사자가 2천이면 심리적 한계선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미군은 한 국전에 참전한지 한 달 만에 수 만 명이 전사하였습니다. 과연 무지한 한국 좌익 이 주장하는 대로 그들이 국익을 위해 참전하였을까요? 아닙니다. 그들은 한국 사 람들처럼 그렇게 복잡하지 않았어요.

미국인은 민주주의와 자유를 위해 투 쟁하도록 교육받은 국민입니다. 그네들은 당시 Korea 라는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었어요. 그러나, 맥아더 장군이 트루만 대통령에게 말한 대로 트루만 대통령이 한국 국민을 미국 국민에게 소개한 대로 알았을 뿐입니다. 트루만 대통령은 한국 국민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는 국민이라고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그 한마디에 하버드생들이 감동되어 학업을 중지하고 사병으로 자원 입대했으며, 의 사들이 병원문을 닫고 한국 전선으로 달려왔던 것입니다. 찬반 토론을 하고 참전 한 것이 아니라, 미국 대통령이 소개한 한국인상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습니 다. 미국 국민들은 민주주의와 자유를 위해 함께 투쟁하기 위해 한국에 파병되기 를 지원했던 것입니다. 사기성이 가득한 한국 좌익이 주장하듯이 제국주의를 위해 한국전에 참전한 것이 아니예요. 그래서 우리가 합리적으로 미국을 이해하는 것 이 필요합니다. 냉전은 미국에서는 안팎에서 공산주의의 도전을 받던 시대였습니 다. 한국전 휴전 후에는 공산주의 사상이 미국 사회에서 퍼져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상계에 깊숙히 침투한 공산주의와의 싸움은 미국에서도 결코 수월하지 않은 싸움이었습니다.

흔히 한국인이 착각하는 것보다 미국 반공주의의 역 사는 훨씬 짧습니다. 오히려 반공의 역사는 한국이 더 길지요. 냉전과 더불어 미 국은 반공주의 종주국이 됩니다. 그?? 그 전에는 미국도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잘 몰랐으며, 태평양 전쟁 당시만 해도 소련군이나 중공군과 군사 동맹을 맺었던 나 라가 미국이었어요. 백악관은 1947년에 소비에트 팽창주의의 낌새를 차리고 러시 아의 동태를 경계하기 시작하였으나, 일반 미국 국민은 민주주의 국가 건설을 위 한 한국인의 노력에 동참하기 위해 한국에 우정을 품었던 것입니다.

그렇 다면, 오늘날의 한국의 반미주의에 미국이 당황하고 황당해 하는 것도 무리가 아 닙니다. 지금 http://bookstore21.net/audio/history/cold-war.htm
에 오세요. 냉전: 민주주의와 투쟁(Cold War: Democracy and Struggles)이라는 제 목의 이 오디오에 한국 좌익의 반미 논리를 무너뜨릴 모든 객관적인 사실이 있습 니다. 미국인들이 맥아더 장군을 존경하는 이유와 한미 우정의 역사가 이 오디오 에 있습니다. http://bookstore21.net/audio/history/cold-war.htm 을 북마크해 두세요. 그리고 역사의 진실을 함께 배우고, 토론하며, 나누도록 합 시다.

http://bookstore21.net/audio/history/cold-war.htm


미국은 이기주의 때문에 참전했나 ?
역사학도 날 짜 2005/10/26 (20:56)
미국인이 이해하는 냉전의 역사와 한미 관계


미국은 한국보다 200년 앞선 민주주의 역사를 가진 나라이지만 여성에게 참정권이 주어진 시기는 한국과 동일한 1940년대입니다. 한국에서는 민주주의가 시작된 첫날부터 주어졌던 여성 참정권이 미국에서는 근 200년 걸린 긴 여정이었습니다. 이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 는가요? 해방 정국이나 냉전이 시작된 시점은 미국에서도 민주주의가 여전히 발전 하고 있었던 시기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한번쯤은 미국인의 시각에 서 냉전의 시대 배경과 한미 관계를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흔히 무식하 고 미개한 한국 좌익은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한국전에 파병했다고 주장합니 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1950년은 미국이 처음으로 살기 좋은 나라였던 시절 이었습니다. 19세기 미국은 유럽인들에게 멸시받던 나라였습니다. 1920~1930년대 에는 거리에 실업자가 넘치는 대공황의 터널이 있었습니다. 1940년대에는 2차 대 전 전쟁터마다 미군이 파병되어 죽어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1940년대 후반에 겨 우 살만한 나라가 되나 싶더니 한국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한국 전쟁 때 확인된 미군 전사자 수만 5만 4천이요, 아직은 생사를 알지 못하는 실종자 수가 부지기수요, 허다한 참전용사들이 평생은 중환자실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이라크 전 참전 2년에 전사자가 2천이면 심리적 한계선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미군은 한 국전에 참전한지 한 달 만에 수 만 명이 전사하였습니다. 과연 무지한 한국 좌익 이 주장하는 대로 그들이 국익을 위해 참전하였을까요? 아닙니다. 그들은 한국 사 람들처럼 그렇게 복잡하지 않았어요.

미국인은 민주주의와 자유를 위해 투 쟁하도록 교육받은 국민입니다. 그네들은 당시 Korea 라는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었어요. 그러나, 맥아더 장군이 트루만 대통령에게 말한 대로 트루만 대통령이 한국 국민을 미국 국민에게 소개한 대로 알았을 뿐입니다. 트루만 대통령은 한국 국민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는 국민이라고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그 한마디에 하버드생들이 감동되어 학업을 중지하고 사병으로 자원 입대했으며, 의 사들이 병원문을 닫고 한국 전선으로 달려왔던 것입니다. 찬반 토론을 하고 참전 한 것이 아니라, 미국 대통령이 소개한 한국인상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습니 다. 미국 국민들은 민주주의와 자유를 위해 함께 투쟁하기 위해 한국에 파병되기 를 지원했던 것입니다. 사기성이 가득한 한국 좌익이 주장하듯이 제국주의를 위해 한국전에 참전한 것이 아니예요. 그래서 우리가 합리적으로 미국을 이해하는 것 이 필요합니다. 냉전은 미국에서는 안팎에서 공산주의의 도전을 받던 시대였습니 다. 한국전 휴전 후에는 공산주의 사상이 미국 사회에서 퍼져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상계에 깊숙히 침투한 공산주의와의 싸움은 미국에서도 결코 수월하지 않은 싸움이었습니다.

흔히 한국인이 착각하는 것보다 미국 반공주의의 역 사는 훨씬 짧습니다. 오히려 반공의 역사는 한국이 더 길지요. 냉전과 더불어 미 국은 반공주의 종주국이 됩니다. 그?? 그 전에는 미국도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잘 몰랐으며, 태평양 전쟁 당시만 해도 소련군이나 중공군과 군사 동맹을 맺었던 나 라가 미국이었어요. 백악관은 1947년에 소비에트 팽창주의의 낌새를 차리고 러시 아의 동태를 경계하기 시작하였으나, 일반 미국 국민은 민주주의 국가 건설을 위 한 한국인의 노력에 동참하기 위해 한국에 우정을 품었던 것입니다.

그렇 다면, 오늘날의 한국의 반미주의에 미국이 당황하고 황당해 하는 것도 무리가 아 닙니다. 지금 http://bookstore21.net/audio/history/cold-war.htm
에 오세요. 냉전: 민주주의와 투쟁(Cold War: Democracy and Struggles)이라는 제 목의 이 오디오에 한국 좌익의 반미 논리를 무너뜨릴 모든 객관적인 사실이 있습 니다. 미국인들이 맥아더 장군을 존경하는 이유와 한미 우정의 역사가 이 오디오 에 있습니다. http://bookstore21.net/audio/history/cold-war.htm 을 북마크해 두세요. 그리고 역사의 진실을 함께 배우고, 토론하며, 나누도록 합 시다.

http://bookstore21.net/audio/history/cold-war.htm
김영철  (10-26-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