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투리 단상
초등학교 6학년 때인가로 기억되는데, 당시 아버지가 購讀하시던 연합신문에, 조그맣게 ‘영남사투리’라는 난이 있었다. 써 있기를,
“도라도라 캐싸도 니 줄끼 머 있노? 꼬장은 매바실코, 토장은 내미나고, 폿죽도 실타카마 머슬 주먼 묵을라노…?‘(달라달라 해도 너 줄것이 뭐가 있냐? 고추장은 매워서 싫고, 된장은 냄새 나고, 팥죽도 싫다면 뭘 주면 먹을래…?)
내가 영남 쪽 사투리를 처음 대한 내용이다. 하도 귀에 설고 신기하기도 해서 아직 기억하고 있다. 당시 나는 아버지 직장(서울시청)의 직함에 의해, 장충단 공원에 설치된, 이북 피난민 수용소에서 거의 함께 생활하면서, 이북, 주로 평안도 사투리를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들어왔던 시절이다.
그 후, 중·고등학교를 부산 피난 시절에 4년 가까이 지내면서, 그 쪽 말씨에 꽤나 익숙해졌고, 당시 가깝게 어울려 지내던 8명인가의 친구 중에, 함경도 출신이 4명이나 되던 것이 계기가 되어, 또 그쪽 말씨를 접할 기회도 있었다.
아니, 그보다 훨씬 전 이야기부터 해야 옳을 것 같은데 순서가 뒤바뀌었나 싶다.
태생은 서울인데(아버지쪽), 어머니는 황해도가 고향이시다. 기억이 닿는 한의 어린 시절부터, 외할머니와 作故하실 때까지 함께 생활했으니, 말씨가 그 쪽 것이 많이 섞여 있게 되었고, 일제 시대에 총독부의 소개 정책에 의해, 충북 옥천 땅에 가 살면서, 거기서 말도 배우고 3학년을 마칠 때 까지 있었으니, 충청도 말씨도 간혹 무의식중에 섞이게 되었으리라….
이러구러 대학에 진학했을 때, 바로 옆집에, 소설가를 지망하던, 2년쯤 선배 되는 사람이 있어서, 그로부터 많은 문학작품을 소개받아 읽은 일이 있고, 그중 金思燁교수의 ‘春香傳’의 내용에 기재된 호남 사투리의 재미에 빠져 들면서, 그 쪽 말씨를 예습할 기회가 있었고, 군대 제대 후, 光州에서 1년 반 살게 되어, 그 사람들에게서, 살아 있는 사투리를 들으며 실습할 기회가 있었으니, 제주도 사투리만 빼 놓고는 상당히 여러 군데의 말씨를 적어도 알아듣게는 된 셈이다.
어떤 고장을 여행한다면, 그 곳의 風光과 음식과 그리고 특징적인 사투리 등이 어울려, 그 고장의 特味를 吟味하는 기회가 됨은 周知의 사실이다. 해당지역이 고향인 사람들은, 모처럼의 향수가 되살아나는 순간이 될 테고, 생소한 사람들에게는, 색다른 맛을 접하는 신기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호기심으로 몇 마디 그 쪽 말을 해 보는 것도 재미스럽고, 간혹 “고향이 이 쪽이냐?”는 말을 들을 때는 속으로 간지럼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日常을 무덤덤하게 지나기보다, 약간씩의 장난끼라고 양해해 주기 바란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어느 고장 사투리건, 話者와 相對가 확실하게 그 뜻을 알고 이해할 수 있다고 확신되지 않는 경우, 가급적 쓰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 이유는, 첫째 어느 지역에 가서 그 쪽 말을 한다는 것이, 다른 고장 말을 하는 혼란이 있을 수 있다. 평안도에 가서 집에서 기르는 거위를 ‘당아니’라고 하면 못 알아듣는다. 그건 황해도 용어인 것으로, 평안도에서는 ‘게사니’라고 한다.
둘째, 같은 말인데도 지방에 따라 의미가 전혀 다른 것도 있다.
‘아재’라 하면, 대부분의 지방에서는 아저씨로 듣는데, 함경도에서는 그것이 ‘아주머니’인 것이다. “요 건너 파랑대문집 아재가 바람났대.”하고 쑤군대면, 듣는 사람에 따라서는 아줌마가 어쨌다고 듣게 되고, 그것이 큰 싸움의 불씨가 되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것이다.
더욱 더 내가 “아~ 사투리 시늉도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하고 긴장하게 된 일을 소개하면서 얘기를 마무리 지을까 한다.
호남지방에 “빠구리를 친다”라는 말이 있다. 뜻인즉, 학교에서, 학생이 선생님 허락 없이 내 빼는 것을 뜻한다. 어디 놀러 가거나, 극장 구경을 가거나 하는 거겠지…
그런데 영남에도 똑같은 말이 있는데, 그 곳에서의 의미는, 성행위를 가리키는 卑俗語인 것이다. 좁은 땅에서 어쩌면 그 뜻이 이렇게도 다를까? 실제로 겪은 일인데 같은 말인데도 영·호남의 차이가 이렇다는 것을 이상의 예를 들어서 얘기했더니, 부산 출신의 어느 동료가 “그 말이 정말인지 집에 가서 확인해 봐야지”했다. 부인이 전주 출신이라나…? 다음날 그가 집에서 있었던 얘기를 요약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보래이, 당신 빠구리라 카는 말 아나?”
“알재, 학교 때 솔찬이 했지라…”
(아니 뭐가 어째? 잠시나마 이쪽 저쪽에서의 의미가 다르다는 점을 생각해 내며 마음속의 중심을 잡아가려는데)
“고놈이 말이여. 너무 자주 할꺼는 못 돼야도 재미는 있어 잉?”
“머, 머라꼬? 니 시방 머라캤노?”
(익숙치 않은 의미의 차이를 깨닫고 무너지는 중심을 잡을 수 있기까지는 아주 잠깐이라도,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런저런 이유로 해서 사투리는 문학 작품의 한 부분으로서, 많은 독자 앞에 모습을 드러내거나, 해당 지방 박물관에, 지방문화재의 한 부분으로 소중하게 간직될 일이고, 함부로 外地에서 쓸 일은 아니지 않을 까 생각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