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세기에 바라보는 한국전쟁
책: 전쟁과 사회, 우리에게 한국전쟁은 무엇이었나?
저: 김동춘
출: 돌베개 출판사
304 쪽에서 309쪽에서 옮겨 실었읍니다
남북한의 평화 질서 구축과 통일의 전망을 거론하면 언제나 한국전쟁의 책임문제가 제기된다. 지금까지 발생한 세계의 모든 전쟁에서 교전 국가가 언제나 상대방에게 책임을 떠넘겼듯이, 남북한이 국가로서 모습을 갖추고 있으며 자신의 생존을 우선 가치로 두는 한 상대방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일은 계속될 것이다. 즉 양 국가가 존속하는 한 어느 쪽도 김일성 책임론 혹은 미국 책임론은 철회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전쟁의 직접적인 발발 배경이나 먼저 총을 쏜 측에 대한 사실 규명작업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최근의 연구성과에 의존해 본다면 우리는 당시 김일성과 북한 지도자들의 호전적인 군사주의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다. 그러나 1945년 이후의 정치 상황을 종합해 볼때,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상대방을 없애고 나아가 자신을 중심으로 하는 통일 권력을 가지려 시도한 남북한 정치지도자와 핵심 지배집단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또 단순한 정치 갈등을 동족 간의 전쟁으로 까지 나아가게 만들고, 극좌와 극우의 정치지도자들이 남북한에서 권력을 장악하게 만들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후 세계전략 및 자신에게 유리한 국가를 건설하려 했던 미.소 양 강대국의 점령전책에 더욱 근원적인 책임이 있다.
서대숙이 강조한 것처럼 김일성의 전쟁 목적은 단순히 제한전의 개념을 구현하는 것은 아니였으며, 아시아에서 공산주의가 팽창되거나 견제되는 것과도 무관한 것이었다. 그에게 이 전쟁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실현하는 것이었고, 한국의 분단이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이승만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전쟁은 그가 떠벌렸듯이 ‘자유세계를 지키는 것’과는 거리가 있었다. 설사 전쟁 발발에 이승만이 덜 주동적이었다고 하더라도, 그에게 전쟁은 자신에게 닥친 정치적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고, 또 김일성과 다른 각도에서 분단 문제를 해결할수 있는 길이었다. 한국전쟁의 구조적 배경이 어떠하든지 간에 전쟁을 결정한 것은, 그리고 전쟁이라는 방법을 사용한 것은 김일성이었다. 그러나 이승만 역시 할 수만 있다면 같은 방법을 사용했을 것이다. 김일성과 이승만의 차이는, 김일성이 그 계획을 실행에 옮길 수 있었고 이 일을 위해 군대를 준비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결국 통일 혹은 새로운 국가 건설을 위한 평화적 방법을 포기하고 무력에 의한 통일을 추구한 것이 한국전쟁이다. 북한이나 남한이나 민족해방과 통일의 레토릭으로 전쟁은 정당화하였다. 이것은 1950년 무렵, 무력에 의하지 않는 민족통일의 가능성이 사라진 것을 의미하였다. 그러한 조건을 만든 것은 바로 미국과 소련이었다. 미국과 소련은 전쟁 발생의 가장 중요한 행위자였다. 38선의 강제 분할과 점령, 남북 양측에 대해 자신에게 우호적인 국가를 수립하려는 매우 적극적인 노력, 그것을 위한 군대의 육성작업은 이미 적대적인 두 정권의 수립, 그리고 전쟁의 시작이었다. 즉 남북한 양쪽에 정부가 수립되었다는 것은 상호 선전포고였으며, 이미 전쟁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남북한의 적대적인 정권이 선전포고로 나아가게 만든 배경은 미.소 군정의 적극적인 점령정책에 있었다. 특히 미국의 식민지 질서 현상 유지정책은 일제 잔재의 청산을 통한 국가 건설을 염원하는 대다수 민족 구성원의 열망을 억누르는 것이었다. 이러한 무리한 현상 유지정책은 그것에 저항하는 좌익 및 중도적 민족세력과 극우세력 간의 갈등을 걷잡을 수 없는 폭력 대결로 나아가게 만들었고, 취약한 기반을 가진 이승만 정권으로 하여금 오직 폭력에 의지해서만 통치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북한의 급진적인 사회주의 개혁 역시 남한에서의 정치갈등을 증폭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문제는 남북한의 민중들에게 외세 배격, 통일을 명분으로 한 지배집단의 정치적 야망을 제압할 힘이 없었다는 점이며, 더 거슬려 올라가면 한반도 전후 처리 문제를 강대국 마음대로 결정하는 과정에 개입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이렇게 본다면 한국전쟁은 일제 식민지 지배의 직접적인 귀결이라고 볼수 있다. 즉 한국전쟁이 발생한 배경은 조선 왕조가 식민지로 전락한 과정과 다르지 않으며, 이 점에서 20세기 한국사는 바로 스스로 국가를 세울 수 없었고, 외세의 힘에 의해 자신의 운명이 좌지우지 되었던 식민지화의 역사라고 집약해 볼수 있을 것이다. 일제 식민지로 전락하면서 국토는 황폐화되고 자원은 약탈당했으며, 수많은 문화유산이 유출 파괴되었고, 죄 없는 민간인의 재산이 약탈 당하고 부녀자들이 강간 당했으며, 가족이 흩어지고 고아들이 발생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살기 위해 정든 땅을 버려야 했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원하지 않는’ 전쟁이 터지자 나라를 다스린다는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줄행랑을 쳤으며, 고귀한 생명은 파리목숨이 되었고, 조상들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들은 무차별적인 폭격으로 잿더미로 변했으며, 누대에 걸쳐 오순도순 살아온 마을과 가옥은 불살라졌고 피난민들은 사냥감이 되었다. 따라서 남북한 정치권력과 국가의 성격이 일본 제국주의가 심어 놓은 폭력국가에서 길들여진 대중들의 복종적인 의식과 행동이 별로 극복되지 않은 시점에서 전쟁 발발과 더불어 학살이 발생 했다고 볼 수 있다.
오늘의 시점에서 우리는 지난 100여 년간의 외세 개입의 역사와 전쟁의 역사를 학습함으로써, 이완용 등 소수의 친일파를 매도하고 분단을 조장하며 전쟁을 개시한 남북한 정치가들에게 모든 책임을 지우는 일 등을 반복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는 이들 정치지도자들이 등장하여 그러한 외세 의존적 행동을 할수 있었던 내부의 정치사회적 기반, 그러한 지도자들을 추대한 민중들의 의식, 그리고 외세의 개입에 대해 무방비상태에 빠진 민족 내부의 제반 조건들에 대해 먼저 질문을 던져야 한다. 네언(Tom Nairn)이 말했듯이과도한 반외세 민족주의는 ‘과정의 진실’ 놓치게 될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역사에서 ‘중요한 개인’의 역할이 폄하될 수는 없지만, 역사의 진행을 중요한 개인의 책임 문제로 돌리면 역사를 현재화, 사회화하는 것이 어렵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김일성과 이승만을 탓하기 전에, 김일성과 이승만, 그리고 그들에게 매달린 양측의 지배집단이 형성된 국내외적 조건, 그리고 해방 직후의 정치 갈등이 정치 폭력으로 시작하여 결국은 무장투쟁, 전면전으로 발전하게 되는 과정에 먼저 시선을 돌려야 한다.
한국전쟁의 최대 수혜자는 미국과 중국, 일본, 그리고 남북한의 지배집단이었고, 최대의 피해자는 참전했다가 죽고 다친 군인과 그 가족들, 이산가족, 피학살 민간인, 장기수, 미군범죄의 피해자, 기아선상의 북한 주민, 과도한 군사비 지출로 인해 응당 누려야 할 복지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대다수 남북한 민중들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한국전쟁을 접근함에 있어서 국가 중심적 시각에서 벗어나 일단은 민족 중심적 시각을 회복해야 하며 더 나아가 민족 문제를 사회적. 인간적 차원에서, 즉 사회 구성원의 차별, 고통과 희생의 차원에서 접근해 가야 한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는 전쟁을 통해 북한정권의 침략성을 배우기보다는, 자주적인 통일국가를 건설하지 못한 상황—주권이 확보되어 있지 않아서 국가권력이 국민에 대한 책임을 지지 못하는 외세 의존의 분단 상황—에서 전쟁이 민중들을 얼마나 고통에 빠뜨릴 수 있는가를 배울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지난 세기 민주국가를 건설하려는 근대화의 프로젝트가 얼마나 많은 희생을 요구하였는가 하는 점에 주목할 수 있다. 이것은 근대국가 완성이라는 문명화의 길로 나아가야 할 필요성과 동시에 근대국가로 집약되는 문명화의 한계를 동시에 성찰해 보아야 하는 우리의 묘한 위치에서 기인한다. 따라서 벌거벗은 임금님을 보는 어린아이의 시각으로 지난 50년 동안 남북한이 서로간에 전쟁 상황을 조성 하면서 무엇을 해왔는가를 생각해 본다면 우리는 어느 정도 진실에 도달할 수 있다.
국가와 민족이라는 것도 인간의 존엄성을 실현할 수 있는 한 존중될 수 있는 가치이며, 인간을 노예나 동물의 수준으로 전락시키는 상황에서는 국가와 민족을 존중하자는 주장은 허구일 수밖에 없다. 민족국가를 건설하자는 열망은 문명화.인간화의 한 과정이기는 하나 문명화.인간화의 종착점은 아니다. 따라서 어떤 방법을 사용하더라도 통일된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는 주장이 당위적으로 인정될수 없다.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지불되어야 하는 구성원의 희생과 고통의 총량이 국가를 건설한 이후 얻을수 있는 복리를 훨씬 능가하거나 구성원 중 일부를 ‘희생양’으로 만들어야 한다면, 그러한 국가 건설의 노선에 대해서는 반드시 ‘정당한 회의’를 표시해야 한다. 해방 정국에서 한국전쟁에 이르는 기간은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나 자주독립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는 당위의 열망이 모든 민족 구성원 사이에서 워낙 강했기 때문데, 이러한 점은 문제 제기조차 될 수 없었으나 오늘의 시점에서는 다르다. 우리는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통일국가인가라는 의문을 던져야 한다.
대체로 전쟁과 빈곤은 인간을 동물의 수준으로 전락시키는 근대문명 최악의 양대 재난이라고 볼 수 있다. 전자의 경우는 대체로 국민 혹은 민족을 위한다는 명분하에 정치권력에 의해 자행되며, 후자의 경우는 자본주의적인 시장경제와 그것을 지탱하는 국가의 경제정책에 의해 조장되는 경우가 많다. 양자는 별개의 것으로 보이지만 세계 자본주의체제, 열국(inter-state)체제의 틀 내에서 본다면 같은 부모가 낳은 다른 아들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50년 전 한국전쟁 과정에서 민중이 당한 비참함과 인간 존엄성의 훼손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 잔존하고 있는 야만의 흔적들, 즉 극우 반공주의의 광기, 소외계층의 궁핍과 사회적 배제 등의 현상과 같은 뿌리를 갖고 있다. 우리는 한국전쟁을 인간의 존엄성을 앗아가는 이러한 세계 자본주의, 그것의 정치적 표현인 국제적 군사 대결체제라는 틀 속에서 보아야하고, 한반도는 물론 전 세계에서의 항구적인 평화 질서의 구축과 인권의 실현이라는 전망 속에서 그 부정적 유산을 청산할 길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