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두현의 시 모음

제 일 권
Reading & Writitng
목차


제일권

(*) 한국시문학 우수작품상

지리산, 1958년 (*)

알코올 중독자 (*)

텅빈 무덤

사랑 만은

장가용을 보내면서

고회를 지나

화전민

가을 산

그린 위에서

18홀

고향

금언

아우

아들과 강아지

손자

새벽

묏비둘기


제이권


행려병자 (*)

시라는 것

어머니



알코올 중독자


사유를 몽땅 강탈당한 거리의 부랑자

바람부는 데로 간다

그의 검은 취장이 석회질의 화석이 되어가고

해독기능을 상실한 간장이 굳어가고 있다

말초신경은 퇴행성, 파킨슨병자처럼 떨기만 하는데

사지는 균형을 잃고 마침내 쓰러진다

고향 이름조차 지워진 대뇌

누가 이 사람을 이렇게 만들었나

군중의 사회에서 어디 의지할데 없는 외로운 사람

얼굴표정도 없다

유배간 자식이름은 희미한 별자리

거기 안개가 그의 재산이다

의미없는 그의 말들이 가끔 초현실주의자의 시가 되고

그 시는 노래가 되어 안개 속에 퍼진다

현대의학이 풀수없는 병자

도시마다 십자가가 걸려 있는데

그의 사지는 길 위에 쓰러지고

겨울냉기에 떨고 있다

언제 그의 꿈은 사라젔고

페인이 되었나

누가 담을 줄수있나요



정두현

텅빈 무덤

텅빈 텅빈 무덤을 파고
슬픈 비석을 세웠다

아버님은
어디선가 홀로
어디선가 홀로 이름도 없이
어디선가 홀로 이름도 없이 골짝이에
홀로 묻히 셨겠지

임천에서 서울로
포탄이 날라 오던 날 새벽
아버님은 홀로 떠나셨다
새벽 안개 속으로
고문으로 망가진 몸을 이끌고

반세기도 넘는
긴 어두운 세월 뒤
산하나 넘고 물하나 건너면
지척인데도
조국 땅인데도
지구 반데쪽 먼길 돌아
찾아 갔을 때
아 아버님은
이미 이세상 사람이 아니였다

어디 선가 홀로
어디 선가 홀로 이름도 없이
어디선가 홀로 이름도 없이 골짝이에서
홀로 묻히 셨겠지

슬픈 지구 또 멀리 돌아
고향
문장대(속리산) 바라다 보이는
기울어진 고향집 앞산에
떵빈 텅빈 무덤을 파고
어머님의 (한많은) 주름살깊은 한을 묻고
우리들의 슬픔으로 무덤을 덮고
눈물을 무덤위에 뿌렸다

텅빈 텅빈 텅빈
한 많은 무덤

사랑 만은

떠날때는
모두 다
버리고
가라지만
사랑 만은
고이 간직하고 가렵니다

붉은 노을
마지막 언덕위
갖고 싶은 것은
사랑뿐

다 버리고
가라지만
사랑만은
사라만은
간직하고 떠나렵니다
       장가용을 보내면서


주여
받아 주소서

당신의 아들
여기 눈감고 누워 있습니다

티끌 하나 없이 왔다가가
티끌 하나도 없이 살다가
티끌 하나 없이 떠나는
삶이
눈감고 누워 있습니다

주여
받아 주소서
당신의 아들

내 마음 속에
작은 제단을 허락 하소서

나만의 작은 제단을 쌓아
당신의 아들이 그리울 때면
그 문을 조금 열어
그가 걸어간 티끌 없는 길을
더듬어 보렵니다

어쩌면 그렇게도
티끌 하나 없이
긴긴 세월을 걸어 갈수 있었을까
곰곰히 생각 하게 합니다

주여
그래서 나는 당신의 아들이
이처럼 자랑 스럽습니다

내맘속 제단 작은 문에
정다운 이름 '장가용'이라 새겨
들어가는 길 깨끗이 쓸어 놓고
온 세상에 그의 걸어간길
보일려고 합니다

주여
받아 주소서
눈감은 평온한 당신의 아들
허락 하소서


      장가용의 함진애비 정두현

                                           지리산, 1958년


해지는 능선 노고단 오솔길 옆

붉은 노을 그늘진 기울어진 바위 밑

구슬픈 달맞이 꽃 밭에

한 젊은이의 뼈 반듯이 외롭게 누워 있다

풍화 작용으로 탈육한 뼈만 하얗게 반짝인다

남은 것은 허리뼈에 감겨져 있는 헐렁한 가죽띠 하나

그 의 살덩이는 지리산 흙이 되었다

그의 혼은 고향하늘 별 되어 밤마다 고향집

내려 보고 있을까

그의 젊은 꿈은 은하수 되어 허리 잘린 조국

내려 보고 억만 개의 별로 울고 있을까

우리의 역사는 그의 사형 집행인

우리의 잔인한 역사의 들판엔

그 뼈를 묻을 한 뼘의 땅도 없고

우리 비극의 신전에는 그의 혼을 위한

향불조차 없다

남부군의 마지막 혼은 아직도 우주속에

잊어버린 방황자 - 우리 존재의 비극

누가 이 젊은이의 어머니 일까

누가 이 빨치산의 사랑하는 여인일까

우리의 역사는 기억상실증의 고열에 신음하고 있지만

두 여인은 오늘도 백발을 희 날리며

섬진강 언덕에 서서 멀리 지리산을

응시하고 있으리라

우리들의 역사를 응시하고 있으리라



정두현

화전민


낯선 젊은 남자가 의사를 찾았다

나는 군의관이라고 말했다

"군의관도 의사가 아닌가요?"

"그렇지요!"

그는 왕진을 가셔야한다고 내 손을 붙잡았다

새벽 어스러름 나는 왕진가방을 챙겨 그의 뒤를 따랐다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논두렁 길을 가다가 걷는다

산간의 오두막 집에 들어섰다

그의 아내가 밤새도록 산기가 있었으니

해가 중천에 뜬 시간

건강한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나는 그렇게 산과가 되었고

산부인과 의사가 되었다

그는 고산지대에서 나오는 한 소쿠리의 감자와 옥수수를 내게 주엇다

왕진비였다

산간을 나와 논 밭길을 걸어 나왔을때 오후의 태양이 내 이마에 와 닿았었다

그 신생아가 주소도 없는 집에서 태어난 아이가

지금 40대의 장년이 되어

화전민이 더는 없는 세상의 태양아래 살고 있으리라

흰 고프 공



또 토핑이냐

요 작은 놈이

겨우 다섯야드 나가면서

하얗게 웃는다

맹랑한 놈








18홀


뼈마디가 쑤신다

18홀을 치고 나면

손가락 마디 마디가 아프다

누구의 죄도 아니다

나이 탓 아니냐
                  고회를 지나

오늘이 일흔 한 살인데

먼길 꿈 같이 걸어 왔구나
남은길 얼마 남았는데

벗을 하나 둘 바람되어
노을진 언덕 넘어 갔는데

오늘도 벗 하나 북망으로 넘어 갔다

아직 나는 걸어 가고 있는데

하나씩 둘씩 그들의 짐 내려 놓고
바람 속으로 사라져 간다

아직도 나는 맨발로 걸어가고 있는데

저녁은 어두워지고
별들만 겨울밤 하늘 하얗게 반짝인다

오늘이 일흔 한살인데


                         가을 산


가슴 속 깊이 화석이 되어잇는

검은 잎들 다 털어 버리고

나는 텅 빈 가을이 되었습니다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가 만드는 음악을 아시는지가요

산은 작곡가, 성악가가 되어있습니다

신령한 사람은 보이지 않습니다



새소리는 하늘로 퍼저나가고

물소리는 단풍빛 젖어들고

바람소리는 국화향기를 머금고 있습니다



당신이 깔아준 융단의 오솔길 끝에

노을이 걸려 있습니다

음악이 끝나고 미술이 시작되었습니다



청빈의 가을이 되었습니다

비어있슴으로 채워지는 가을이 되었습니다

비엔나의 베토벤 숲 속도 이런 가을이었을 것입니다


고향


지금은 낯선 사람들 모여사는 곳

아버지 자란 초가집이 초라하게 빈집으로 서 있는 곳

집앞에 미루나무 두 그루 하늘 높이 서 있고

까치집이 고층 아파트처럼 층층 있었던 곳

뒤란에 장독대 배나무 한그루 서 있던 곳

그 옆에 빨간 다리아가 피어나던 곳

대추나무 디딜방아 소리나던 집

교실 둘 뿐인 학교로 동네아이들이 왁자지껄

몰려가던 세계

황토길 중간쯤에 성황당이 있었고

어린동생 융이가 어디엔가 묻혀 있는 곳

할머니 빨래하시던 개울에서

우리들은 멱 감으며 마냥 즐거워했던 여름 물개들

마을 뒤로 밤나무숲과 메밀밭이 있었던 곳

고향이라고 찾아와도 이제 아무도 반겨주지 않는 곳

다행이 개들은 짖지 않았다

13대 선조가 묻혀있는 선산에 가 절을 올리고

북으로 간 아버지,

시신이 없는 빈 아버지 무덤에 절하고 나오는

70대의 아들

그 아들이 떠나면 이제 고향도 타향이 된다.


                      금언



입술을 다물고 멀리 보아라

깊고 멀리 보고

그리고 생각하라


침묵이 금이라고 그러지 않터냐


바람이 불고

감물은 흐르고

그 속으로 별똥별이 떨어진다

                     아우



너무 어린 나이에 떠났기에

무덤조차 하락되지 않았던

스픈 이별


꽃 한송이 놓아줄

무덤도 없이 떠난 동생


나는 보이지 않는 그의 무덤 속으로 찾아가

울다가 잠이 든다
                           아들과 강아지


우리가 살든 골목은 이름도 근사한 조용한 계곡의 정원
막다른 골목길에 언제나 아이들이 바퀴달린 썰매를 타고
내려와 모이든 곳

골목 마지막 집 을슨네 부인이 난처한 얼굴로 우리를 찾아와
인사를 건넸다

"당신 막내 아들이 아무데나 아무 때나 누가 보건 말건
오줌을 누어요!"

아들에게 "강아지나 길가에 오줌을 눈다"고 그랬더니
아들왈, "나와 강아지가 어떻게 다르냐"고 물었다

그 대화를 조용히 듣고 계셨든 할머니,
"그만 두어라, 그놈 크고나면 거기서 누라고 그래도 안 눌테니!"

그 아들이 이제 중년의 신사가 되어 점잖다.

다음 크리스마스에 아들이 집에 오면
나는 "너는 이제 강아지와 얼마나, 어떻게 달라젔나?"
물어봐야겠다.

              손자



저보다 키가 큰 의자에 앉아

강아지 밥먹는 것을 처다보다가

슬쩍 강아지 옆에가

두팔 부엌 바닥에 버티고

강아지 밥을 정답게 먹다가

할애비 처다보고 빙그레 웃는다



손자는 강아지의 가장 가까운 친구

손자는 복실 강아지

새벽


하얀 새털 구름이 동녘 하늘 가장자리에 누워

아직 잠에 곤하다


키가 큰 나무들도 잿빛 이불 아래서

아직 잠들어 있다


작은 새들만 잠에서 깨어나

꽃나무들을 깨운다


꽃나무 속에서 노래하는 새들에게

새벽공기가 얼마나 신성할까


새들은 새벽예불시간을 제일 좋아한다

종소리 떨림이 세상의 온 몸으로 퍼저나가고 있다

묏 비둘기



뒷 산에

노을 걸릴때



뒤란 담에 앉는

묏비둘기 한 마리



한 마리는 어디로 가고

노을이 그의 고독을 달래주고 있는가



어둠이 오면

솔나무 숲속으로 날라가


잠을 청하는

외로운 묏비둘기


포수가 떨어트린 비둘기 한 마리

누가 살려놓을수 있나

정 두현페이지 돌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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