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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탐방-심영보
白頭山 天池에 가다
                                          沈     英     輔
      아 ---   백두산 천지 !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 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

  한국 사람이면 누구 던지 평생토록 수도 없이 반복해서 불러 온 애국가 가사
1절이다.   우리는 지난 수  십년 동안 [백두산(白頭山)]이 우리 겨레의 시조 단군(檀君)이 탄강하신 “민족 기원의 성지(聖地)”요  “민족의 영산(靈山)” 임을  이 노래 가사를 통해 익혀 왔던 터이다.
  나는 이미 10 여 년 전에도 한번 가 봤었지만 (그때는 연길-용정-북파 北坡 코스) 그때의 감격과 환희를 꿈에서 조차 잊을 수 없던 차에, 요즘에 와서 <고구려 유적지인 집안 集安과 환인 桓仁을 포함하는 새로운 백두산 서파 西坡코스>가 또 개발되었다는 소식을 듣자 좀이 쑤셔서 견딜 수 가 없었다.
  이런 정을 알게 된 몇몇 동료와 선후배님들이 호응하는 바람에 12명의 [행림가족 백두산 탐방 팀]이 꾸며 졌는데  모이고 보니 남녀 의사가 각 4명이고 그분들 가족이 또한 4명 이었다.
  백두산 서파코스 등정에서 가장 힘들다는 곳은 화강암으로 잘 다듬어 놓은 1236개 계단의 마지막 완만한 언덕길이다.   그러나 8순 전후의 연로하신 일행 몇 분이 계단코스 중 일부에서 가마의 도움을 받았을 뿐 대부분의 팀원들은 쉬엄쉬엄 걸어서 50분쯤 걸리는 언덕길을 무난히 올라갔다.

  고진감래(苦盡甘來) !
  계단 길을 올라 산마루에 이르자 눈앞에 펼쳐지는 광활한 천지(天池) -- !
  이 천지를 병풍처럼 둘러 안은 위용 당당한 16개의 고산준봉(高山峻峰) !
  눈과 얼음에 덮인 천지를 스치고 불어올라 와 가슴 깊이 스며드는 상쾌한 바람 !   그리고
  이 백두산의 산세와 천지의 용자에서 뿜어 나오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향긋한 내음 !   아니 그보다도
  거기 어디에선가 단군성조의 환영이라도 마주칠 것 같은 즐거운 환상 !
  여기까지 오르느라 종아리가 다소 뻐근해 졌건 말건, 잠시 가마의 덕을 입고 올랐건 그냥 올랐건 그건 아무 문제도 아니었다.   이런 산행의 고난은 오직 백두산 천지를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는 더 큰 성취의 보람과 기쁨을 안겨주기 위한 과정이었을 뿐이다.
  아마 우리가 오른 거기 서파코스 산마루의 “5호 국경경계비” 옆에 <... 노래 부르기, 예배하기, 깃발 흔들기, 현수막 내걸기... > 등을 금지하는 경고문 간판이  서 있지 않았다면 우리 모두는 거기서 애국가를 소리 높여 부르지 않고는 못 배겼을 것이다.
  나는 이미 지난날의 북파코스 등정 때에 그걸 경험했고 (그때 거기엔 경고판이 없었음) 그때의 일행은 누가 먼저 랄 것도 없이 일제히 감격에 겨운 애국가와 “대한민국 만세”를 목청 높여 불렀었다.
  그새 많은 사람들이 금강산이네, 개성이네, 평양이네 하면서 내나라 북녘 땅의
흙을 밟아 보았다고 하지만, 새삼스레 이 민족의 영산(靈山) 백두산 마루에서 경비병도 없고 국경철책도 없는 국경선(국경경계비) 저쪽의 “내 땅”을 슬쩍 밟아 보고 거닐어 보는 스릴은 또 다른 추억꺼리로 남게 되었다.
 
     천지(天池)는 칼데라 호수
  잘 알려진 것처럼 백두산 [천지]는,  한라산의 백록담과 함께 우리 땅에 둘밖에 없는 칼데라 호수(Caldera/화산 분화구에 생긴 호수)다.
  남북 지름이 4.85 Km, 동서 지름이 3.35 Km, 호수 둘레가 13 Km 이고, 호수면 면적은 9.8 평방 Km (약 3백만 평) 이며, 호수면의 해발 높이는 2194m 라고 알려져 있다.  평균 깊이는 204m 이고 가장 깊은 곳은 312m 이상 이란다.
  천지에는 물고기가 살지 못한다고 여태까지 알려져 왔는데 근년에 북한에서 산천어를 시험방류하고 관찰중이라고 하며, 또한 마치 스코틀랜드의 <네스호 괴물>처럼 규명되지 않은 <천지 괴물>이 상당히 증거 있게 목격되거나 사진에 잡힌 적이 있어서 이 역시 두 나라에서 예의 추구하고 있다고 한다.
  호수의 물은 천지를 둘러 싼 원형의 산줄기가 토끼의 입술(harelip)처럼 살짝 낮게 갈라진 곳인 달문(達門)을 통해서 북쪽으로 넘쳐흘러 높이 68m의 장백폭포(長白瀑布)를 이루고 이 물이 다시 송화강(松花江)에 이어진다.  천지 언저리 두 군데에서 온천물이 솟아나는 것 외에도 외곽 산기슭에는 곳곳에서 온천수가 솟아나고 있고 (백암, 백두, 장백, 제운 온천 등), 압록강의 원류가 되는 계곡 물줄기, 제자하(梯子河), 금강대협곡(錦江大峽谷) 등의 하천과 계곡이 도처에 널려있다.
 
     장백산맥의 주봉 이랄 수 있는 이 [백두산]을 이제는 천지의 수면 한복판에서 딱 반반씩으로 갈라 중국과 북한이 나누어 차지하고 있어서, 천지를 둘러싸고 있는 16개의 봉우리 중에서 북한 영역에 있는 제일 높은 봉우리 장군봉(병사봉, 백두봉 / 2744m/ 북한에서는 2749m라고 주장)을 북한에서는 “백두산”이라 부르고, 중국에서는 중국 영역에 있는 백운봉(2691m)을 “장백산( 長白山/창바이산)”이라 부르고 있다.   이 모두를 아울러서 하나의 이름 [백두산]으로 부르던 산을 지금은 두 개의 이름으로 나누어 부르고 있는 사연이다.
  기록에 의하면 백두산은 가장 최근으로는 1597년, 1668년, 1702년에 각각 폭발한 적이 있어서 현재로서는 휴화산(休火山)이라지만 언제 다시 화산활동을 재개할지 알 수 없다고 한다.   산꼭대기와 둘레의 마루턱에는 지금도 흰색의 화산석 부석(浮石)이 여기저기 덮여있어 백두산(白頭山)의 이름 유래와 활화산이었던 과거 역사를 대변해 주고 있다.
 
     고산화원(高山花園)과 금강대협곡(錦江大峽谷)
  백두산 일대가 모두 원시생태계보존지구여서 고도가 낮은 평원지대에는 온갖 삼림이 매우 울창하게 들어서 있고, 나무가 잘 자랄 수 없는 해발 2000m이상의 높은 고원지대에는 거기 어울리는 꽃밭들이 형성되어 있다.  그리고 이 꽃밭에는  시기에 따라 여러 가지 고산화가 차례로 핀다는데, 서파코스의 완만한 버스 산행 길에서 우리가 목도한 6월 상순의 고산화원 꽃들은 나지막한 키의 노란색 꽃 “두견화” 일색이었다.
  그밖에 서파코스 하산 길에서 만난 금강대협곡은 그들이 <중국의 그랜드 캐년> 이라고 자랑하는 전장 12 Km, 폭 100~200m, 깊이 70m 의 대협곡이었다.  지각의 융기와 편차침식으로 형성된 각가지 모양의 기암괴석과 계곡 그리고 수목들은 조물주가 과연 천혜의 넓은 땅위에 관광자원 까지 푸짐하게 얹어 준 것 같은 모습이었다.
  속절없이 잃어버린 연길, 도문, 용정, 화룡 등과 통화, 집안, 환인 등의 간도(間島) 땅에 대한 아쉬움도 말할 수 없이 큰데, 더구나 북중(北中)국경협정(1964년) 이전까지만 해도 분명히 내 땅 이었을 이곳 백두산 서파언덕과 화원, 대협곡을 남의 땅 인양 돌아볼 수  밖에 없는 우리의 심정을 우리끼리 말고 누가 또 이해할 수 있을까 ?
 
     노익장(老益壯)의 선배님들
  여러분의 선배 의사 분들이 함께하신 이번 여행은 우리 내외를 비롯한 연약(年若)한 후배들에게 귀중한 교훈과 용기를 안겨 주었다.
  8순 전후의 선배 선생님들이 보여주신 의욕 넘치고 노익장하신 체력관리 모습은 이제 겨우(?) 7순 남짓인 우리 내외나 또래 일행에게도 잘만하면 앞으로 10년은 더 저 분들처럼 여행도 다니고 여생도 즐길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해 주었으니 이 보다 더 기쁜 일이 어디 또 있을까 ?       끝.

백두산 천지를 배경으로 한 심영보 부부.


백두산 서파(西坡/서쪽 언덕) 마루턱이, 5호 국경비   (중국-조선, 1990) 근처에서 이재흥 부부와 함께  천지를 배경으로 찍음.


백두산 천지의 오감도
남간도(南間島) 에 해당하는 집안(集安,지안)은 옛 고구려의 두번째 도읍지인데, 여기에는 광개토대왕 (廣開土大王/제 19대 왕/현지에서는 호태왕 好太王 으로 부름)의 능()과 그 이웃에 이 그림의 능비(陵碑)가 있어,
[광개토대왕 비](호태왕비)라고 소개 되어 있음.   이 비를 보호하고 있는 비각 건물은 근대에 와서 지은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