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는 스코틀랜드인"

  2008년 8월 16일 자메이카의 우사인 볼트(Usain Bolt)가 베이징 올림픽 100미터 경주에서 9.69초의 세계신기록을 내어 금메달을 타게 되었다.  그가 너무도 쉽게 우승 한 것을 NBC의 올림픽 특별웹사이트는 기막히게 엄청난 속도라고 표현 했다.  그는 곧 이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람'이라는 경칭을 받게 된다.  100미터 경주는 올림픽에서 관객이 가장 많이 운집하는 경기의 하나다.  볼트의 승리는 개인의 영광일 뿐 아니라 자메이카의 영광임은 당연하다.  기적 같은 인간의 속도를 과시 할 수 있었으니 그 실력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다만 경의 할뿐이다.  이것을 보고 나는 기억하는 것이 있다.

  영화 '불의 전차'(Chariot of Fire)로 알려진 '나르는 스코틀랜드인'(Flying Scott)이라는 별명을 가진  스코틀랜드의 달리기 선수 에릭 리틀(Eric Liddell)을 기억하게 한다.  1924년 파리에서 있었던 제12회 국제 올림픽대회를 앞두고 '세상에서 제일 빠른 사람'이라는 명예의 소유자가 미국 선수 찰리 페독(Charley Paddock)이었다.  또 그와 같은 기록의 소유자로서 미국 선수 잭슨 숄츠(Jackson Scholtz)가 있었다.  그러나 온 세상이 기대했든 것은  '나르는 스코틀랜드인' 에릭과 이 두 미국 선수와의 경쟁이었다.  세상은 에릭의 기록으로 봐서 그가 승리 할 것이라고 믿었었다.  그러나 100미터경주의 예선이 주일인 7월 6일로 변경 되었다.  에릭은 예선에 나가는 대신 파리에 있는 스코틀랜드 정통교회에서 설교를 하고 안식일답게 지났다.  물론 그는 100미터를 미련 없이 포기한 것이다. 에릭은 기독교인으로서 십계명중 네 번째의 계명을 지킨 것이 당연할 뿐이다. 이 행동은 대영제국 올림픽 위원장이었든 황태자를 경악케 했을 뿐 아니라 온 세상 사람을 놀라게 하였다.  페독과 숄츠같은 미국 선수들에게는 그들을 응원 하기위하여 함께 온 헐리웃의 유명 배우와 미국의 백만장자들이 있었다.  올림픽 우승자들에게 오는 부귀영화는 TV의 광고만 보아도 짐작이 갈 것이다.  그때도 그러 했다.  예로 1924년 올림픽 수영 메달리스트 죠니 와이쓰뮐러(Johnny Weissmuller)는 타잔 영화로 세계에 알려 졌다.  모든 사람이 그 기록을 알기 때문에 에릭이 100미터에서 승리할 것을 의심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삼일 후에 자기가 준비하지도 않은 400미터에서 승리함으로서 이 세상에 그의 실력을 분명히 보여 주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속도를 나추지 않았었다.  이것은 경주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으로서 후반 200미터는 지쳐서 같은 속도를 유지 할 수 없다.  그런데도 에릭은 계속 같은 속도로 질주하여 우승을 해 내었다.  나중에 기자들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첫 200미터는 내 능력으로 뛰었고 나머지 200미터는 주님의 능력으로 뛰었다 고 대답했다.

  에릭은 경주에 열중하면서 한번 도 주님을 잊은 적이 없었다.  그는 누이 제니에게 주님이 나를 중국에 보내시려는 것도 알고 내가 빠르게 뛰면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도 확신 한다고 하였다.  그가 뛸 때 마지막 부분에서 고개를 하늘로 재끼면 관중들은 에릭이 이긴다는 것을 확신 한다.  그는 주님의 말씀 '나에게 영광을 주는 자에게 나는 영광을 주리라'라는 말씀을 늘 잊지 않았다.  아는 사람들은 그를 '주님의 즐거운 경주자'라고 불렀다. 그 후 그는 전 대영제국을 두루 다니면서 달리기 경주와 전도를 쉬지 않았다. 

  1932 목사안수를 받고 에릭은 그의 부모가 평생을 사랑하며 전도로서 생을 보낸 중국에 전도사로 임명되었다.  그 것이 그의 소원이었고 주님의 부르심으로 믿고 주님에게 약속 하였던 터이다.  물론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농어촌에서 가난과 싸우는 중국인들을 도우면서 봉사와 전도사역을 하였다. 그때 중국은 전란의 사태였었기 때문 전도하기에 힘든 사정이었다. 1937년경에는 일본의 침략이 중국을 피로 물 드리기 시작했다.  1943년에는 모든 서양전도사들을 지금 올림픽을 개최하고 있는 베이징에서 하로 거리인 상동성의 웨이시엔에 있는 한 전도회관에 강제 수용하였다.  거기서 그는 뇌암으로 고통을 받으면서도 자기의 건강보다 수용된 사람들의 건강을 염려하는 대 전념 하였다. 

  1945년 2월21일 그는 향년 43세로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에릭은 주님과의 약속을 지켰고 금메달보다 더 귀중한 주님의 면류관을 얻었다.  2008년 8월 16일 베이징에서 100미터 경주를 관람하는 사람 중에 거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 산동성 어느 마을에서 '나르는 스코틀랜드인' 에릭 리틀(李愛銳)이 주님과의 약속을 지켜 중국의 백성들을 사랑하고 그들에게 봉사하고 그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며 여생을 보내다 희생이 된 것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지금 세계에서 가장 급속도로 경제성장을 하며 또 급속도로 기독교인이 증가하는 이 나라에서 오늘 볼트의 기적 같은 속도를 찬양할 것이다.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미래를 밝게 바라보면서 그들의 빈곤과 싸우며 복음의 씨를 심다가 그가 사랑하는 땅에서 주님에게 돌아간 60년전의 '세상에서 제일 빠른' 에릭 리틀을 볼트에게 열렬한 환호를 보낸 관중 중에 누가 기억이나 하고 있는지.

강창욱   2008년 8월 16일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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