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려병자



흰 눈이 사뿐사뿐 쌓이던 밤이다

그는 꼿꼿이 앉아
눈 뜬 체
굶* 얼어 이승을 하직 했다

떠날 때를 알고
떠나는 자는
득도를 했음 일가
둠** 침침한 동내 집 닭장 속으로 들어가
생의 모든 고뇌
얼어붙은 닭똥밖에 내려놓고

어느 옛 선승의 죽음처럼
꼿꼿이 앉아
눈 뜬 체
살 얼어 뼈 얼어 고뇌도 다 얼어붙어
해탈 성불하여 열반에 들었다

그는 성자가 되었다

나는 얼어 수정 같이 맑은 그의 눈동자 속에서
성자의 죽음을 보았고
닭들도 성자의 죽음을
애도 하고 있다

반쯤 떨어져 찌그러진 닭장 문이
극락세계의 정토로 가는
첫 문이었구나

그는 상여도 없이
같이 떠날 꼭두리도 하나 없이
홀로 먼 길 들어
투벅 투벅 정토로 걸어갔다

원효대사가 그렇게 걸었을까

이름 석자 공백으로 남아 있는
나의 사망진단서가
그의 이승에서의 마지막 흔적

흰 눈에 찍힌 그의 마지막 발자국에도
그의 이름 석자 없었다

성자는 이름도 없었고
이승의 이름 필요하지도 않았다


(*  굶고)
(**  어둠)


시라는 것


시는 인간의 영혼을 깨워준다

긴 겨울 잠으로 부터



시를 쓰는 일은 옹달 샘에 생수가 고이게 하듯

가슴 속에 눈물을 고이게 한다



시를 읽는 일은

깊은 산속 암자에서 들여오는

새벽 독경 소리

나즉한 참회의 노래다



사는 인간의 영혼을 깨워 준다

긴긴 겨울 잠으로 부터

어머니


어릴때

대청에 앉아

어머니와

별 해든 밤



나는 오늘밤

조용히

어머니  _____

불러 본다



오늘밤

내 꿈엔

어머니

그 별과 함께 오실까





두 개의 얼굴


흰 머리칼을 감추기 어려운 봄날

뒤뜰로 나가 화강석을 앞에 두고

끌과 망치로 얼굴 하나 파기 시작해

그 봄이 갈 무렵

수수한 얼굴 하나

조각 하고 나왔다


20년쯤 후

노보시비르스크에서 만난 알타이 돌

장승 하나

어디서 많이 본 얼굴

거기 있었다


둥그런 얼굴

경계하는 눈썰미

두툼한 입술

아아, 누가 내 뒤뜰에서 옮겨놓았나

(아니야 내가 꿈속에서 본 얼굴 파
놓았는지 몰라)


바이칼 호수에 살던 석기시대 사람들

화강암 속에 자기 얼굴 하나 흔적으

로 파 놓고

반도로 들어와 정착했고

한 부족은 베링해협을 건너 아메리카로 왔다



무심코 뒤뜰에 새겨놓은 얼굴 하나가

내가 산 석기시대를

21세기 포토맥강가 마을에

남겨 놓을 줄이야


(시향 2009  신인문학상 수상 작)
침묵



입술을 다물고 멀리 바라보아라



ㆍㆍㆍㆍㆍㆍㆍㆍ생각을 하라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


생각을 하라 ㆍㆍㆍㆍㆍㆍㆍ




입술을 열기 전에 먼저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 오래 생각 하라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

또 생각을 하라





침묵이 금이라고 그러지 않터냐




입술을 다물고 멀리 멀리 바라보아라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  생각을 더 하라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

또 생각을 더 하라





침묵은 천지를 뒤흔드는 우뢰와 같다  (*)




바람이 불고

강물은 흐르고

그 속으로 많은 별똥별이 흘러 갔다




입 다물고 멀리 멀리 바라보는

바위이고 쉽다




*「 깨달음의 거울 」법정지음
  p 113에서 인용했음.


시문학 우수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