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려병자
흰 눈이 사뿐사뿐 쌓이던 밤이다
그는 꼿꼿이 앉아
눈 뜬 체
굶* 얼어 이승을 하직 했다
떠날 때를 알고
떠나는 자는
득도를 했음 일가
둠** 침침한 동내 집 닭장 속으로 들어가
생의 모든 고뇌
얼어붙은 닭똥밖에 내려놓고
어느 옛 선승의 죽음처럼
꼿꼿이 앉아
눈 뜬 체
살 얼어 뼈 얼어 고뇌도 다 얼어붙어
해탈 성불하여 열반에 들었다
그는 성자가 되었다
나는 얼어 수정 같이 맑은 그의 눈동자 속에서
성자의 죽음을 보았고
닭들도 성자의 죽음을
애도 하고 있다
반쯤 떨어져 찌그러진 닭장 문이
극락세계의 정토로 가는
첫 문이었구나
그는 상여도 없이
같이 떠날 꼭두리도 하나 없이
홀로 먼 길 들어
투벅 투벅 정토로 걸어갔다
원효대사가 그렇게 걸었을까
이름 석자 공백으로 남아 있는
나의 사망진단서가
그의 이승에서의 마지막 흔적
흰 눈에 찍힌 그의 마지막 발자국에도
그의 이름 석자 없었다
성자는 이름도 없었고
이승의 이름 필요하지도 않았다
(* 굶고)
(** 어둠)